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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기피태도 안된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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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기피태도 안된다(사설)

입력
1996.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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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관한 한 온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은 조성경위와 규모, 사용처, 은닉등 불법행위의 전모를 완전히 파헤친뒤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정의와 법정의의 구현인 것이다. 따라서 노태우씨의 변호인들이 2차공판에서 반대신문을 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노씨가 어떠한 변명이나 변호·반대신문도 불원한 때문이라면 노씨의 자세는 실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물론 그의 반대신문포기는 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공판에서 변호인의 반대신문이란 무엇인가. 1차공판때 검찰의 신문이 공소유지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피고인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럼에도 반대신문을 아예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얼핏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지 않겠으니 처분만 바란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노씨의 의도는 딴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변호인신문에서 각 재벌들로부터의 금품수수건에 대해 일일이 「성금」이라고 변명했다가 국민과 재판부의 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고 재벌들이 「뇌물성」을 부인할 것으로 보고 일부러 포기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 빠른 공판진행으로 선고후 정치적 판단을 기대하려는 희망사항도 생각할 수가 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노씨는 반대신문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도 변호인들이 밝힌 사유서에서 실제 비자금에 관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와 변명을 최대한 응축시켜 사실상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 아울러 그는 사유서를 통한 간접화법으로 자신을 구속기소해 법정에 세운 검찰과 집권세력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나타냈음을 보여주었다.

즉 자신이 재임중 받은 비자금이 성금으로 원활한 국정운영과 정국안정을 위해 유용하게 썼음에도 오늘에 와서 부정축재로 간주되고 있다는 반성못한 생각에서 불편한 심기를 밝힌 것이다. 나아가 누구도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변명·변호를 거부한 것은 공판 자체에 대해 납득할 수 없으니 기피하겠다는 뜻으로까지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씨가 사과성명대로 진심으로 참회한다면 재판에 기피적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재판에 적극 참여해서 본인이 주장할 것은 주장하고 밝힐것은 밝혀야 한다. 조성 비자금의 규모와 배경, 대선지원자금 등 사용처, 그리고 은닉자금내역 등을 진실하게 밝히는 것이 전직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참회와 봉사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토록 요란하게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비자금의 전모가 규명되지 않은데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그의 신문거부가 엉뚱한 선례가 되어 장차 전두환씨 공판에서 답습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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