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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라”/오명선(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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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라”/오명선(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6.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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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지 벌써 10개월이 됐다.우뚝 솟은 빌딩과 넘쳐나는 상품등은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다.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든 먹고 입고 쓰는 문제는 불편이 없다. 서울과 지방의 물건이 똑같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우선 놀랍다.

하지만 동일민족이고 같은 한반도에 있는 이북의 상황은 가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이북은 각도마다 시단위에 하나씩 있는 외화상점(달러를 쓰는 상점)을 제외하고는 물건 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물건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물건 자체가 없다.

북한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암시장에서 물건을 산다. 그나마 물건을 사다가 안전원(경찰)에게 발각되면 파는 사람은 물건을 빼앗기고 사는 사람은 현금을 몰수당한다. 빼앗긴 물건과 현금을 되찾자면 물건의 가치와 값에 따라 안전원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 북한에서는 법을 어겨야만 살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체제이지만 국가의 제일책무인 국민의 생활보장부터 실패했다. 안전원들과 당간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선 「고이라(뇌물을 바치라)」이다. 이 말은 주민들 사이에 이미 유행어가 됐다. 맨입으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게 됐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상식이 됐다.

한가지 실례를 들어본다. 90년경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사는 「째보」라는 별명을 가진 34세 정도의 청년이 있었다. 그는 전문 금장수였다. 중국과 금거래를 해 돈을 벌어 간부들 이상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수입과 지출을 따져보면 그가 불법적인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금세 드러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안전부의 분주소에서는 단속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째보가 큰 간부들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으로 금을 사러갔다가 지방 안전원들에게 단속당한 일이 여러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무사히 풀려났다. 북한에서 불법 금거래가 적발되면 10년이상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째보의 「빽」은 도 검찰소 3처(안전부 담당부서) 처장이었다.

안전원들부터가 뇌물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관장하는 검찰소 3처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째보는 처남과 같이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자신의 자전거를 훔치려던 도둑을 발견해 그를 붙잡아 때렸는데 그만 죽어 버렸다.

북한에서는 살인은 5년이상의 징역형이다. 그러나 째보는 이번에도 교도소에 갔다가 1년도 못되어 병보석으로 석방돼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자 피해자측의 진정이 있었고 「중앙 검열구루빠」가 신의주에 특별감사를 나갔다. 결국 째보의 「빽」이었던 검찰소 3처 처장은 뇌물 수수혐의로 재산몰수와 함께 해고돼 평안북도 천마군으로 가서 노동을 해야만 했다.

북한은 간부로부터 노동자들까지 능력껏 불법행위를 해야 살아갈 수 있다. 먹는 쌀부터가 암거래이고 혼수감인 옷감도 암거래를 통해야 겨우 구할 수 있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세상이 바로 북한이다.

□약력

▲64년 평안북도 신의주 시 출생

▲신의주 박운고등학교 졸업

▲조선인민군에 9년간 근무

▲신의주 일용품협동조합 자재지도원

▲94년9월 북한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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