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한글깨우친 할머니의 자기표현/가슴에 묻은 정과 한의 고백 “진한 감동”「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음세대간)는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고 일만 하면서 살아온 80세를 넘긴 할머니가 쓴 책이다. 나이 70세가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한글공부를 해서, 잠 못 드는 밤마다 새벽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남몰래 10년동안이나 적어 놓은 것을 그 자녀들이 발견해서 엮어 놓았다.
이 책 얘기를 어느 신문에서 읽고 나는 이 책만은 꼭 사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까닭은「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온 할머니가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도 학교공부를 하지 않아서 책을 읽지 못하고, 그래서 책의 해독을 입지 않고 살아온 이 할머니가 쓴 글이야말로 가장 깨끗한 우리 말로 되어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요즘 서울과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의무교육도 받지 못하고 한글을 읽을 수 없었던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이제야 한글을 배워서 겨우 뜨덤뜨덤 적어 놓은 일기나 편지에서 참으로 깨끗한 우리 말을 찾게 되어 여간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8세때부터 베틀에 앉아 베를 짰고, 남편을 여의고 6남매를 키우면서 온갖 고생을 하고, 지금은 자식들의 보살핌과 따돌림의 한쪽에서 병든 몸으로 쓸쓸하게 살아가는 홍영녀 할머니가 가슴에 쌓여 있는 온갖 정과 한을 섬세하게 적어 놓은 이 책은, 이런 나이가 된 우리나라 서민층의 노인들이 대체로 가지게 될 듯한 외로움과 서러움과 괴로움과 아픔들을 너무나 잘 나타내었다. 무엇보다도 그 나이에 한글을 익혀서 이렇게라도 훌륭하게 자기표현을 한 것이 놀랍지만, 이 책에서 나는 사람의 자기표현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이런 노인들에게 이와 같은 능력을 갖게 한 우리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고 아까운 일은 홍영녀할머니가 쓴 글을 그대로(맞춤법만 바로잡는 정도로 해서) 내지 않고 거의 글줄마다 고쳐 놓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런 할머니가 좀처럼 쓸 것같지 않은 말, 학교공부를 많이 한 유식한 지식인들이나 쓸 것같은 말이 글 속에 가끔 나오는 것으로라도 짐작되지만, 이 책 첫머리에 사진으로 나온 지은이의 친필원고와, 어느 신문에서 소개한 지은이가 쓴 원문 몇 대문을 이 책의 본문과 대조해 보아 확인이 된다.
아직은 책의 해독을 그다지 받지 않고 있는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렇지만, 이와같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주머니·할머니들이 어찌어찌 해서 겨우 자기표현을 하게 되었는데도 이런 모양으로 또 수난당하는 것은 그대로 우리 말 우리 혼이 수난당하는 역사라 아니 할 수 없다.<이오덕아동문학가>이오덕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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