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넨코는 후계 고려 김정일 초청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공산당서기장은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훨씬 전인 85년 4월에 이미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라고 촉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12월 사망한 러시아의 군인이자 사학자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장군의 유작으로 최근 모스크바에서 출간된「일곱 지도자―소련지도자의 회랑」(전2권)에서 드러났다. 이 저서를 통해 새로 밝혀진 한국관련 부분은 다음과 같다.
▲(85년 4월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고르바초프는 당시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에 건설되고 있던 원전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북한 지도부에 요구했다. 이 요구는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김일성에게 전달됐다.
▲84년 초 체르넨코 당시 공산당 서기장은 그동안 수차례 소련방문을 요청한 김일성의 방문을 수락한 뒤 갑자기 무려 30년 전의 문서를 꺼내오도록 지시해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개전을 조른 사실을 숙지했다. 이해 3월 23일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는데 체르넨코는 김일성이 한국의 군사력 운운하며 끈질기게 무기원조를 요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대비한 것이다.
▲85년 2월 체르넨코는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에게 소련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소련 정보기관들은 김일성의 건강이 악화해 있으며 이때문에 후계자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다.
▲85년 8월 소련 군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을때 김일성은 84년 자신의 소련방문 때 체르넨코가 북한군 현대화를 지원키로 약속했다는 점을 여러차례 언급하면서 북한이 침공받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침공받을 경우 한국에서 대대적인 빨치산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럴 경우 특수요원을 한국에 침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성은 이를 위해 5백대의 헬리콥터와 비행기 대공포 무전기 등 온갖 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모스크바=연합>모스크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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