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리 사법절차따라 처리”/정국 해빙 섣부른 기대에 쐐기김영삼대통령이 9일 새해국정연설을 통해 여야영수회담의 개최용의를 밝힌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향후 국정운영이 연착의 궤도로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당쪽에서도 지난해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후 팽팽한 긴장속에 계속되어온 정국상황이 새해에 들어서는 풀릴 것을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서인지 김대통령이 대선자금문제에 관해 직접적인 언급없이 슬쩍 비켜갔는데도 원론적인 지적이 있었을뿐 그 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물론 「정치권 사정」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지만 『정치권 사정은 절대로 있다』고 단언하는 사람이 많다.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사정은 하지 않겠지만 검찰수사 등 사법절차에 따라 비리가 드러난 경우를 그냥 덮어두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한 비서관은 『정치권 사정을 한다는 말도 틀린 말이지만 정치권 사정을 안한다는 말은 더욱 틀렸다』는 말로 청와대의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이 문제에 관한 김대통령의 생각을 짚어볼 수 있는 일화가 몇가지 있다. 김대통령은 국정연설이 있기전 모언론에서 「김대중 김종필씨에 대한 사정은 없다」는 취지의 기사가 보도되자 전에 없이 크게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을 일일이 전화로 불러 『어떻게 이런 기사가 나갈 수 있느냐』며 질타했다는 후문이다. 이 일이 전해지면서 청와대내에서는 더이상 『정국이 풀려갈 것』이라는 쪽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게 됐다.
김대통령은 또 9일에는 국정연설을 위한 녹화에 들어가기 불과 30분전에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정의와 진실, 그리고 법이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구를 마지막 대목에 끼워넣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야영수회담의 개최용의를 밝힌 것으로 인해 연설내용의 주조가 너무 부드럽게 비쳐질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일은 사법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취지의 문구를 삽입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김대통령의 이같은 원칙론적 입장과 영수회담 개최가 서로 충돌하는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비리척결에 관해서는 원칙대로 처리한다면서도 야당대표들과 만나 「큰 정치」의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영수회담은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더욱이 영수회담이 협상의 자리가 된다거나 밀실에서의 타협처럼 비쳐지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는 정치이고, 사법절차는 사법절차라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권이 우려하고 있는대로 정치인에 대해 검찰수사가 진행될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확언할 수 없으나 일단 청와대의 분위기는 검찰수사 착수의 개연성을 예고하고 있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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