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한 옐친” 레임덕 우려/「평화의지 부각」 체첸늪 탈출 계기될수도체첸 반군의 「키즐야르 인질극」이 사건 발생 25시간만에 대규모 유혈사태 없이 해결됐다. 인질석방과 반군의 체첸으로의 안전귀환을 교환하는 부덴노프스크 인질사태 당시의 해법이 이번에도 적용됐다.
양측의 자세한 협상내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지난해 6월에 이어 또 다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체첸반군들의 요구를 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옐친대통령이 인질의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로 사건을 해결한데 다행스러워 하면서도 이것이 옐친에 미칠 여파에 우려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옐친이 이번 사건에서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정권말기의 권력누수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평화적 해결이 옐친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칠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속단이다. 정치생명이 걸려있는 중대한 순간에 옐친대통령이 취한 행동은 다각도로 계산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때문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의식해 양보할 뜻이 거의 없었던 그가 물러선 것은 더 큰 희생을 막는 편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의 온건한 사태해결은 체첸사태 발생 초기 강공책을 선택함으로써 자초했던 체첸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는 계기를 옐친 대통령에게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방송들은 인질사태 직후 군지휘관을 심하게 질책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이례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는 그가 거물급 인사를 희생양으로 삼아 체첸의 족쇄에서 벗어나려 할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신은 사건을 무리없이 해결한 「평화의 사도」의 모습을 부각하는 데 신경을 쓴 듯하다. 물론 단호하지 못한 면모를 보인데서 잃는 점수도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과적으로 민간인을 방패로 삼아 목적을 달성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근절시켜줄 것으로 기대해온 많은 국민들의 희망을 저버렸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체첸반군들의 모방 인질극이 잇따르고 독립을 요구하는 다른 소수민족들이 이를 악용할 경우 정권 자체가 소수민족 문제로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심장병과 개혁 후유증, 구공산세력의 부활등으로 인기가 바닥을 헤매는 옐친대통령에게 이번 사건이 어떻게 작용할 지 주목된다.<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특파원>
◎거칠고 사나운 체첸전사/회교이념 무장 자살특공대식 공격/인질극 주도 라두예프는 두다예프 사위
체첸인들은 회교도로서 종교가 다른 러시아에 대한 독립투쟁은 성전이며 명예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다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 체첸은 혈연관계를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씨족 중심의 사회로 연장자나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군대의 명령 이상으로 중히 여긴다. 원수에 대해 대를 이어 「피의 복수」를 벌이는 일이 흔하다.
체첸인들이 승산이 없어 보이는 러시아와의 독립투쟁에서 저돌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런 종교적 배경에서다.
체첸인들은 수와 화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을 「자살특공대」식으로 공격해왔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은 체첸인을 「거칠고 사나운 민족」으로 부르며 두려워한다. 러시아 병사들조차 이들과의 전투를 기피할 정도다.
이번에 인질극을 벌인 무장집단은 스스로를 「외로운 늑대(Lone Wolf)」라고 불렀다. 이들의 지도자 살만 라두예프(28)는 체첸 반군의 최고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의 사위로 반군 지도자들중 가장 강경파이다. 그는 체첸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이웃 잉구세티아 자치공화국 등지로 분쟁지역을 확대해 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라두예프는 이번에 러시아에 대해 두다예프를 체첸공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러시아가 결코 들어 줄 수 없는 것이어서 이번 사태 해결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제3, 제4의 인질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조재우기자>조재우기자>
◎체첸 어떤곳/주민 60%가 회교도… 석유산업 발달
체첸은 러시아내 20개 자치공화국중 하나로 러시아 남서부의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해 있다. 구소련 치하에서 이웃 잉구세티아와 함께 「체체노잉구슈 자치공화국」으로 있다가 1991년 독립을 선포했으며 92년 러시아신연방조약에 의해 체첸과 잉구세티아가 별도의 자치 공화국이 됐다. 이웃 잉구세티아와 합쳐 면적 1만9,300㎢에 인구 130만으로 주민의 약 60%가 회교도다.
체첸인들은 19세기 이후 지배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여왔다. 러시아가 체첸 독립을 한사코 막고 있는 것은 체첸독립이 주변 회교 자치공화국들에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이 석유와 천연가스의 보고라는 경제적 가치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체첸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 최대의 정유업 중심지이며 석유산업 관련 기계·화학공업도 이곳에 밀집해 있다.<배연해기자>배연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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