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의 매력과 이야기의 흥미「문학사상」 1월호에 발표된 김이태의 중편 「궤도를 이탈한 별」은 재미교포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차츰 일상의 궤도를 이탈한 삶에 빠져들게 되어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선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문체이다. 어려서부터 비디오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세대의 감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발랄하게 탁탁 튀면서 짧게짧게 끊어지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감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상당히 세련된 사유의 기술까지도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문체인데, 이런 투의 문체로 씌어진 소설을 찾아보는 것이 요즘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선 그 문체의 매력에 끌리게 된다는 사실의 의미를 가볍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이처럼 인상적인 문체의 매력과 더불어, 「재미있는 이야기」의 흥미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의 흥미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래서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또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하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을 가리킨다. 이러한 수준에서의 흥미라는 것은 고전적인 소설이론에서 잘 말해주고 있듯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지만 또한 가장 근원적이고 끈질긴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준에서의 흥미를 중·단편의 세계에서 맛볼 수 있게 되는 경험은 요즘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궤도를…」이 이러한 수준에서의 흥미를 풍부하게 느끼도록 해준다는 사실은 조금쯤 강조되어도 좋으리라.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바로 이러한 수준에서의 흥미 속에 마음 놓고 빠져들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면성을 생생하게 확인하고, 삶에 있어서 우연 혹은 운명이라 불리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입맛 쓴 깨달음을 얻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최근 들어 미국을 작품의 주된 무대로 설정하는 소설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작품들 중의 상당수에서 「미국=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부추기거나 아예 강제하는 공간」이라는 도식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이 작품 「궤도를…」도 물론 거기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소설의 무대로 미국이 자주 등장하는데 비례하여 한국소설문학에 한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같다는 추측이 여기서 가능해진다.<이동하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교수>이동하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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