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이렇게 갑자기 갈줄이야” 안타까움병마와 싸우면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프랑스는 큰 충격과 깊은 슬픔에 젖어들었다.
○…미테랑이 8일 서거하기 몇시간전 부인 다니엘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은 파리 센강 좌안의 프레데릭 르 플레이거리에 있는 미테랑의 아파트에서 고인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을 침대 머리맡에서 지켜보았다.
임종을 지켜본 부인과 두아들 동생 처남등은 고인이 상오 8시30분께 『아주 평안하게』최후를 맞았다고 전했다. 고인이 영면한 아파트는 그가 지난해 퇴임한 이래 거처해 온 곳이다.
○…이날 기자단과의 신년 하례식이 예정돼 있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모여든 기자들에게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우리 곁을 떠났다』며 그의 서거를 알렸다.
미테랑에게 대선에서 2번이나 패한 바 있는 시라크 대통령은 『서거소식을 들은 뒤 조문을 다녀왔다』고 밝히고 『그는 14년 재임기간에 프랑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인물이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미테랑의 사망으로 기자단 신년 하례식은 15일로 연기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프랑스 언론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해 세밑이었다. 르 피가로지등 프랑스 언론은 구랍 29일 미테랑이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겨울휴가를 보낸 뒤 프랑스로 돌아오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그의 최근 동정을 간략하게 다뤘었다.
미테랑은 지병에도 불구하고 부인 다니엘 여사와 딸 마자랭등 가족들을 동반해 성탄절 휴가를 이집트 아스완에서 보냈다. 가족들이 요트를 타고 나일강 유역을 관광하는 동안 그는 주로 특급호텔로 개조된 유서깊은 올드 카타락트 궁전에서 자서전 집필에 열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언론들은 미테랑이 이처럼 해외에서 겨울휴가까지 보내는 등 거의 정상적인 삶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서거를 미처 예상치 못했다.
○…소식통들은 미테랑의 지병이 겨울휴가후 급격히 악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들외에는 이같은 사실이 외부에 일절 알려지지 않아 이날 아침 사망소식이 전해지기 직전까지도 주변에서 그의 위급상태를 전혀 파악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시라크 대통령은 최근 며칠동안 미테랑과의 통화를 통해 상태가 위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같은 통화내용은 비밀에 부쳐졌다.
○…프랑스 2와 TF 1을 비롯한 방송들은 미테랑 서거직후 2시간여에 걸쳐 일제히 미테랑의 삶과 죽음을 다룬 특집프로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방송들은 미테랑의 정치활동과 철학, 생전의 인터뷰 내용, 관계자 증언등을 통해 그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국가발전에 남긴 큰 족적을 기렸다.
미테랑의 서거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이렇게 갑자기 타계할 줄은 몰랐다』며 『어지러운 시국에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세계 각국 반응/콜 독 총리 “위대한 유럽주의자 잃었다”/메이저 “국제사회 큰 공헌 길이 남을 것”
미테랑과 함께 유럽통합의 쌍두마차였던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절친한 친구로서 그의 서거에 애도를 표한다』며 『프랑스와 유럽은 위대한 애국자이자 용기있는 유럽주의자를 잃었다』고 말했다.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미테랑은 국제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며 『깊은 슬픔을 금할 길 없다』고 추모했다.
자크 상테르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그는 유럽통합의 대의를 열렬히 옹호했으며 「하나의 유럽」에 초석을 놓았다』며 『그의 재임기간은 유럽통합에 있어 가장 성과가 있었던 시기였다』고 애도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그는 나처럼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더욱 가슴아프다』며 『지난해 7월 나폴리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서 그가 나를 도와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슬픔을 표했다.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은 『91년 걸프전 당시 프랑스는 이라크와 밀접한 관계였음에도 불구, 미국의 가장 믿을만한 동맹국이었다』며 『당시 나는 미테랑이 양국 관계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회고했다.<파리=송태권특파원>파리=송태권특파원>
◎미테랑 연보
▲1916.10 불 자르낙에서 출생
▲35. 가톨릭계 대학 입학
▲43. 레지스탕스에 참여, 항독 투쟁
▲44.10 다니엘 미테랑과 결혼
▲46. 하원의원 당선
▲47. 제4공화국에서 최연소 장관
▲58. 드골의 개헌조치에 반대, 야당의원으로 변신
▲65.5 좌파 단일후보로 대선 출 마, 드골에 결선서 패배
▲71.6 사회당 창당 주도
▲74.5 좌파단일 후보로 대선출 마, 지스카르 데스탱에 패배
▲81.5 지스카르 데스탱후보 누르고 대통령 당선
▲88.5 대선에서 자크 시라크 누르고 재선
▲93.3 총선서 집권 사회당 참패. 2차 좌우동거정부
▲93.9 한국 방문
▲95.5 퇴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