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 말고 더 듣기 좋고 뜻깊은 신년인사는 없을까 더러 궁리해본 적도 있지만, 막상 인사를 나누어야 할 자리에 가면 그 말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온다. 정초에 걸려온 전화에서 상대방이 얼른 그 소리를 먼저 하고나면 내가 먼저 할 걸 싶기까지 한 걸 보면 오래 길들여진 말은 그 뜻을 꼬치꼬치 따질 것 없이 그냥 튀지 않고 무난해서 좋은 것같다.작년 연말이지만 실은 며칠 전의 일이다. 나갔다 들어오면서 보니 현관 문고리에 조리가 한 쌍 매달려 있었다. 댓개비나 싸리로 만든 재래식 조리도 아니고, 철사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식 조리도 아니었다. 손으로 만지니까 쉽게 바스러지는 풀로 엮은 가볍고 조잡한 거였고 크기도 사용할 수 있는 조리보다 훨씬 작은 장난감같은 거였다. 나는 속으로 판촉물 치고는 너무 무성의한 거라고 생각했다. 상가에 새로 입주한 상인들이 인사장과 함께 병따개나 컵 따위를 문 밖에 놓고 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두개의 조리를 맨 분홍끈에는 그것을 놓고간 상점의 소재를 알리는 아무런 표시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아아, 복조리구나 싶었다. 홍안의 씩씩한 소년의 얼굴도 떠올랐다. 연말에 복조리가 들어와 본지가 얼마만인지 몰랐다.
○20년전 배달 소년
나는 거의 이십년전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옥에 살 때인데 연말이면 안마당에 복조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 신문배달하는 소년의 짓이었다. 용케 지붕에 얹히지 않고 마당까지 넘어 들어왔구나 싶어 소년의 건강한 팔 힘에 절로 웃음이 나곤 했다. 소년은 나중에 조리값을 받으러 와서도 값을 잘 말하지 않고 알아서 달라는 식이었다. 물론 싸리로 튼튼하게 엮은 실용적인 조리였고 우리 집 뿐 아니라 이웃들은 다들 실제의 조리값보다 넉넉히 주는 것을 기쁨으로 알았다. 신문배달하면서 학교 다니는 소년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었다는 기쁨이 곧 복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복조리구나 싶으니 아무리 무성의하게 만든 조잡한 거라도 거두어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세상이 편해져 조리질할 일이 없어졌는데 실용성을 따져 무엇할 것인가. 요새는 신문배달도 소년들이 하지 않고 아주머니들이 하건만 나는 어쩐지 소년이 그 값을 받으러 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삼일 후에 조리값을 받으러 나타난 건 소년이었다. 해맑고 깨끗하게 생긴 미소년이었다. 나는 하도 소년이 예뻐서 잔소리가 하고 싶어졌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봐주는 것이지만 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아무리 조리질을 별로 안하는 세상이지만 걸어 놓고 보아도 흉하지 않을 정도의 모양새라도 갖춘 물건을 사라고 해야 할 것 아니냐는 식의 설교를 하는데 소년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오천원만 주세요』 우리 아파트 집집마다 다 걸어놓고 간거니 한 집에 일천원쯤을 생각하고 한 짓이려니 했는데 오천원이라니, 나는 더욱 흥분해서 설교를 계속했다. 그 값 받아도 떼돈 벌 건 아니란 거 알지만, 그렇게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면 누가 사겠느냐, 적당한 값을 받고 많이 파는게 너한테도 좋을 것이다. 돈은 노력한 만큼 벌어야 한다는 것은 작은 돈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것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복조리가 아니냐? 기쁘게 주고 받도록 하는 게 파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지킬 바가 아니겠느냐는 식의 뻔한 잔소리였다.
○질리게 한 그 얼굴
실은 그런 말을 하는 동안은 내 설교가 얼마나 돼먹지 않은 소리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안 건 그 소리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걸 느끼고 나서였다. 소년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어디 개가 짖느냐는 식의 귀찮고 권태로운 얼굴로 천원짜리 한 장으로 허리를 두른 천원짜리 넉장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장난을 치고 서 있었다. 나는 곧 입다물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 만원짜리를 꺼내가지고 나갔다. 오천원짜리도 있었지만 소년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그 애가 준비한 거스름돈에 맞춰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소년에 질렸을뿐만 아니라 아부까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그 조리만 보면 내 돼먹지 않은 설교가 그 안에서 새나가지도 못하고 고여 있는 것같아 치워버리고 말았다. 소년이 말대답을 안하고 간 것만 고마워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만일 소년이 『여보슈 우리가 한탕주의를 누구한테 배운 줄 아슈』 하고 대들었으면 어쩔뻔 했나 싶기도 하다. 차라리 소년이 아무 것도 안 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내가 쓴 언어는 권선징악적인 동화와 위인전과 순정소설을 읽으면서 자란 세대에나 써먹을 언어이지, 키보드를 두드리고 전자게임을 즐기면서 자란 세대한테는 어림도 없는 수작이라는 깨달음이 정초부터 나를 우울하게 한다.<작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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