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너그러움 원숙미 시편마다 “물씬”/세월넘어선 창작열 젊음못지않은 실험성도김남조 황명걸 이승훈 박의상 이수익씨등 50·60대 시인들의 새 시집이 연이어 나왔다. 지금까지 추구해온 시세계를 온전하게 유지하면서 격조 높은 시정신을 보여주는 책들이다. 해체적 욕구나 절망에 묻혀 전락하는 젊은 시인들의 실험 못지 않게 그들의 시에는 새로운 창작에 대한 욕구와 개성이 살아 있다.
오래 몸담았던 숙명여대를 93년 퇴직하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김남조씨(68)는 「평안을 위하여」에서 사랑, 화해, 슬픔과 신에 대한 경외심을 노래한다. 흐트러짐없는 서정시의 모범이라 할 그의 시는 미움을 안은 이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기쁨에 들떠 있는 이에게 슬픔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평안함과 겸허함에 젖어들게 한다. 「나의 언어는/불행히도 위험하지가 않다…//나 자신처럼/이순의 나이 넘어 온/나의 언어는/…모든 걸 못할 바엔 침묵이 괜찮은 화법이라거니 하면서/낮은 풍향에/몸 굽혀 드러눕는/풀숲이려고만 한다」며 그런 시정신이 자신의 인생을 닮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황명걸시인(61)의 「내 마음의 솔밭」은 76년의 첫 시집 「한국의 아이」이후 두번째로 내는 시집이다. 오랫동안 쓴 시들이라 젊은 날의 지사적 울분에서 황혼을 맞은 관조의 정서까지 내용이 다양한데 소박하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20년만에 새 시집을 내는 것이나 동아일보기자로 근무하다 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해직된 경력, 지금은 경기 양평에서 화랑카페 「무너미」를 경영하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승훈 이수익 박의상씨는 60년대 현대시 동인으로 함께 활동했던 시인들. 이수익씨(54)의 「푸른 추억의 빵」은 진지하게 시어를 다듬어내는 솜씨가 원숙하게 느껴진다. 「내 목소리가/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 「세상의 때를 묻히고 싶지 않은/고고한 산이 날카롭게 세우는 죽음의 벼랑 아래로/아득하게,」등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경지를 향한 지향이 엿보인다.
시에 대한 실험욕이 돋보이는 것은 이승훈(54)의 「밝은 방」과 박의상(53)의 「빨간 구두를 산 여자」. 「술 마시는 이승훈씨」 「이승훈씨의 하루」등 이씨는 이름을 제목이나 시어로 등장시키면서 그 자신을 2인칭, 3인칭으로 두고 자아를 해부하는 특이한 시를 선보이고 있다. 박씨는 2,000여행의 장시를 전작으로 내놓았다. 40대 중반의 여성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를 세심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이 한 번쯤 품었을 일탈에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김범수기자>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