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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구호의 조건/정일화편집위원(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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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구호의 조건/정일화편집위원(남과 북)

입력
1996.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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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비친 1996년의 한반도모양은 밝다.남한(ROK)은 유엔안보리 이사국의 하나로 세계정치무대의 조정자역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북한(DPRK) 역시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올 7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통보해 100주년 기념올림픽을 초청국 197개가 전원 참여하는 사상 최고의 인류단합분위기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한반도에 거는 96년의 기대는 그만큼 크다.

지금 한반도가 스스로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기아를 해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외신들이 전하는 내용, 북한 현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여름 홍수이후 비참한 기아상태에 빠졌고 어린이 사망률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아상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남한측이 상당한 힘이 돼 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한국사회내부에서도 무조건 북한에 쌀과 생필품을 제공해 동족으로서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구호는 이미 지난해 경험에서 밝혀진 대로 남북한 모두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쌀을 싣고 간 한국선박의 태극기를 끌어내리고 구호선박을 억류하는 북한 현실을 보고 남한의 대북 감정은 몹시 상하게 됐고 북한 역시 국제적으로 구호선을 결박하는 무뢰한이라는 이미지만 더하게 돼 양쪽다 아무런 득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조건없는 북한구호는 남한국민이 더이상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으로서도 더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의 양곡구호 사실을 주민에게 철저히 가려왔다. 아무 글씨도 적히지 않은 양곡을 배급받으면서 북한 주민은 『김일성시절에도 못먹던 쌀밥을 김정일은 먹여준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만일 남한의 구호미라는 것을 주민들이 알게 되면 김정일정권에 대해 불을 던질지 모른다.

군량미 전환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북한은 세계에 유례없이 3개월치의 군량미와 탄약을 비축해 놓고 이 군대 비축분에 대해서는 일절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런 판국에 남한구호미중 적어도 15%가 군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은 남북간 긴장상태를 강화하는 결과만 낳는 것이다.

남한이 대 북한원조국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분명한 역사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남한을 대화 상대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해도 남한이 그런 북한을 돕기 위해서는 스스로라도 북한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명백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차례 전쟁을 일으켰고 남한 국민에 대해 전쟁행위와도 무관한 지속적인 범죄를 저질러 왔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북한이 지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단순논리에 묻혀 정리돼야 할 역사가 묻혀버려서는 안된다. 이런 역사가 정리되면 이를 북한이 받아들이든 안받아들이든 한국은 북한의 기아를 도와야 한다는 국제여론에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기구를 중심으로 당장 급한 구호품을 북한에 제공하더라도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 조건의 해결없이 북한구호가 이뤄진다면 한반도문제는 해결이 아닌 혼란을 가중시키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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