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정 불이행에 실속없다” 불만/상시체제 가동 즉각 제재 천명미국이 무역대표부(USTR)내에 각국과의 무역협정을 감시·집행하는 「무역협정감시집행기구(MONITORING AND ENFORCEMENT UNIT)」를 설치하려는 것은 통상관련 제반합의의 이행여부를 철저히 짚어나가겠다는 클린턴행정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미국과 통상협정을 맺은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통상압력이 가일층 강화될 것이며 그 이행여부가 불확실할 경우 보다 즉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행을 강제당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미키 캔터 USTR대표는 5일 이 기구의 설립목적과 관련, 『미국은 세계각국과 1백80여개의 무역협정을 맺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무역협정은 체결 자체보다 체결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앞으로는 각국과 협상보다는 그 이행여부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며 올해를「무역협정 이행의 해」로 선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캔터대표는 이 자리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을 새로 생겨날 기구의 「주요 업무 대상국」으로 지목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자동차 시장을 「완전개방」하기로 양국간 합의가 이뤄졌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새 기구가 한국의 식품유통문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여부를 우선 다루게 될 것이라고 밝혀 한국이 주타깃임을 암시했다.
미국은 클린턴 취임이후 국제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우루과이라운드협정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까지 다자간 경제블록을 형성해 무역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한국 일본 중국등과의 양자간 무역협정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막으려고 애를 써왔다. 그러나 수많은 협정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까닭은 상대국들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의 분석이자 주장이다. USTR 관계자 사이에는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협상 줄다리기에서 상당한 양보를 얻었음에도 『일본이 포괄적 합의를 지켜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고 한국과의 합의에 대해서도 『무역협상과 관련, 한국은 믿을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해 왔다.
그동안 USTR는 미국 관련업자들의 신고나 항의를 기다려 상대국의 협정이행을 감독해 왔던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무역협정 감시집행기구」의 설립을 계기로 자체적인 상시감시체제를 가동하겠다는 것이며 불이행이나 소극적 이행이 발견되면 즉각 강제적 집행조치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새 기구의 역할이 USTR의 기존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띤 옥상옥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즉 현재 USTR의 권한만으로도 협상이행을 강제하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미국내 업자들의 불만을 달래보려는 정치적 제스처라는 평가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클린턴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던 캔터대표의 새로운 대선캠페인』이란 혹평도 나오고 있다.<워싱턴=정병진특파원>워싱턴=정병진특파원>
◎한·미통상 “새 불씨” 우려/식품유통·자동차외 묵은 현안도 사정권
무역협정이행 감시기구설치를 계기로 미국의 통상압력은 새로운 양상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포괄적으로 통상문제를 정리하는 협정체결 대신 체결된 협정의 사후관리에 무게를 두겠다는 계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약속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 실속을 챙기겠다는 얘기다.
무역감시기구의 설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미무역대표부(USTR) 주변에서 이 기구 설치추진사실이 공공연히 흘러나왔고 미국의 싱크탱크인 워싱턴소재 경제전략연구소(ESI)도 11월 「미국제경제정책입안의 새로운 청사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관련조직을 통폐합해 새로운 통상기구의 출범을 예고했었다.
무역감시기구 출범의 배경을 미국 대통령선거에 맞추는 시각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지만 그로 인해 이 기구의 위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인 USTR측도 영구적인 상설기구라는 점과 전문지식과 폭넓은 경험을 가진 인사들로 구성되는 점을 들어 선거배경설을 토대로 한 상징적인 조치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클린턴의 자유무역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거세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미국의 통상정책은 무역감시기구의 등장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에서 번번이 두손 들고 말았던 한국의 입장에서 무역감시기구의 등장은 당혹스럽다. 캔터USTR대표는 무역감시기구 등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조차 한미간 합의된 식품유통문제와 자동차시장개방문제를 적시해 한국이 주요 공격목표의 하나임을 시사했다. 캔터대표는 『신설기구가 최근 합의된 한미 식품유통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넘기는 문제 등을 우선 다룰 것이며 슈퍼301조 지정에 이어 한국자동차시장개방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은 USTR내에서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나라」로 찍혀 있다는 것도 우려를 증폭시킨다. 실제 캔터대표, 샤를린 바셰프스키부대표 및 크리스티나 룬트부대표보(한국담당실무자) 등은 틈만 나면 한국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신설 감시기구는 이처럼 식품유통과 자동차문제뿐 아니라 이미 한차례 지나간 통상문제도 심심하면 들추어내는 전가의 보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감시와 이행을 골자로 한 감시기구의 기능에 고용창출과 실업에 영향을 미치는 무역장벽제거, 성장시장에서의 장벽제거, 외국의 협정위반사례감시 등을 명시하고 있어 갖가지 통상압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근거는 충분히 갖춰 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문제를 비롯, 이미 「꺼진 불」이었던 한미간의 묵은 통상현안도 감시기구의 등장으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국내시장에 대한 감시를 할 경우 많은 문제가 노출될 수도 있다. 선거용으로 등장한 감시기구로 한미통상은 암울한 한해를 보내야할 것으로 보인다.<이재렬기자>이재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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