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대만에 재출발하고 있는 지방자치제가 요란한 소리에 걸맞은 실적을 쌓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상당수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이 선거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주민들도 선거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지방정치를 고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고 있다. 선거란 명분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게다가 현실정치가 아직도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한 모양이다.본격 지자제의 출범으로 인해 한가지 뚜렷해진 현상은 지역주민들의 자치의식이 자극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는 지방자치가 어떤 형태로든지 필요하다는 점과 지방선출직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주민들이 인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새해에도 주민들의 자치의식은 계속적으로 신장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주민들의 의식이 지역내부지향적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견 예상되었던 점이지만 내부지향성의 정도가 과도하여 타지역에 대한 배타적인 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지역이기주의적인 태도가 형성되어 현재의 지역감정을 세분화하여 고착시킬 경우 지자제는 발전에 있어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중앙과 지방간의 관계에서 계속 긴장이 점증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연대하여 지방의 권한을 신장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이나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보일 것이며, 중앙정부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가능하다면 지방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권한을 하부에 위임하여 지방의 재량권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이지만 현실적인 벽이 클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도 상당한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간의 업무관계에서는 집행부나 의회 양측에서 길항관계가 상존할 것이다. 개별단위 지자체내에서도 의회와 집행부간의 마찰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단체장들은 선거시 내걸었던 공약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받을 것이며 언론으로부터의 압력과 비판도 증대될 것이다. 지자제는 독자적인 지방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조정에 의한 전국적인 에너지의 집결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데는 능하지만 당장의 이익을 양보하면서 협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현행 지방자치제에 대해서 대도시 시민들을 중심으로 비판적인 시각이 대두될 전망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방자치제의 운영과정을 통하여 지역주민의 민주의식을 고양하고 지방정부와 주민간의 관계를 긴밀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민주시민사회 건설에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지자제는 여러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정착될 것으로 내다볼 수도 있다.<서울대교수·정책학>서울대교수·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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