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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등정땐 베이스캠프서 정상직행(지구의 한계점에 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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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등정땐 베이스캠프서 정상직행(지구의 한계점에 서다:4)

입력
199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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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카메라 역사적순간 못담아 두차례 정상올랐다12월11일 하오 2시20분(이하 현지시간). 드디어 빈슨매시프 정상에 우뚝 섰다. 거꾸로 꽂혀 있는 스키 스톡 뿐 정상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유난히 좋은 날씨, 빈슨 매시프 등반을 시작한 이후 가장 좋은 날씨 같았다. 하늘마저 쾌거를 축복해주는 것일까. 3대 극점 7대륙 등정의 꿈을 드디어 이루었다. 히말라야 로체봉에 목숨을 바친 금세기 최고의 알피니스트 야르지 쿠쿠츠카(폴란드·89년 로체봉 남벽 등반중 추락사)도,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서 실종된 일본 최고의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식촌직기)도 3대 극점 7대륙 최고봉 등정기록을 세우지 못한 채 탐험인생을 마쳤다. 지구상의 8,000급 이상 자이언트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마이스터」(Meister:거장) 라인홀트 메스너도 3대 극점을 아직 다 밟지는 못했다. 누구도 지금까지 해내지 못했던 일을 자랑스런 한국인이 해낸 것이다.

잠시 멈춘 것 같았던 바람이 다시 거칠게 불어온다. 기온은 영하 35도. 더구나 애써 가져온 비디오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다. 이번 빈슨 매시프 등정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몇가지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정상 등정 순간을 움직이는 화면으로 담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위 때문에 비디오 카메라가 얼어붙은 것이다. 제3캠프를 나서 정상공격을 시작할 때부터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설벽을 오르면서는 비디오 카메라를 일부러 등뒤에 바짝 붙여 메고 땀으로 녹여보려 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박쾌돈대원이 동상에 걸릴 위험을 무릅쓰고 장갑까지 벗고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외 고산 등정사상 처음으로 정상 등정 순간을 항공촬영한 것과 원정대원 전원이 정상을 오르는 기록을 세운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상에 1시간가량 머무르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원들이 너무 지쳤다. 제2캠프까지 내려가려던 일정을 바꿔 제3캠프에서 하루를 쉬었다.

하지만 식량과 연료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어드벤처 네트워크 인터내셔널(ANI―남극대륙 여행알선회사)이 제3캠프 막영지에 저장해둔 비상식량으로 이날 저녁과 다음날(12월12일) 아침까지 해결한 뒤 제3캠프를 떠났다. 제3캠프에는 텐트와 침낭을 그대로 놓아 두었다. 비디오 촬영을 위해 다시 정상을 오를때 사용키 위해서다.

그러나 12월12일과 13일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남극 특유의 블리자드(눈보라를 동반한 강풍)로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김승환대원이 12일밤 베이스 캠프에서 식량을 갖고 왔다. 하지만 침낭이 부족해 텐트 안에 버너불을 피워 놓고 모두들 떨면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틀을 텐트 안에서 쉬고나니 욕심이 생겼다. 12월14일 강한 블리자드가 불고 있었지만 재등정을 위해 제3캠프까지 오르기로 했다.

그러나 설벽을 오르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디가 길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한 번 본 지형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제2캠프를 거쳐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니 빈슨 매시프 정상부근이 강한 눈보라에 휩싸여 뿌옇다.

밤 11시30분. 갑자기 바람이 잠잠해졌다. 베이스 캠프를 떠나 두번째 정상등정에 다시 도전했다. 빈슨 매시프 정상에 두번째로 오른 것은 15일 한밤중. 백야라 한밤중에도 등반이 가능했지만 강한 바람으로 제대로 자세를 잡기가 힘든 날씨였다.

이번에도 비디오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지만 겨우 대원들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남극대륙의 빙하와 엘즈워스 산맥의 웅자한 모습을 영상으로 담으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하지만 덕분에 빈슨 매시프 정상을 두번씩이나 올랐다. 두번째 등반은 베이스 캠프에서 정상까지 만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도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최고의 탐험가­허영호와 이 메스너/메스너 8,000m급 14개 모두 정복/북극점은 95년 정복 나서다 실패

『메스너와는 비교하지 말아달라』 빈슨 매시프 등정후 허영호씨가 한 말이다. 3대 극점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운 허씨마저 경외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라인홀트 메스너(51). 독일태생의 이탈리아인인 메스너는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모험가로 손꼽힌다.

메스너는 1978년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등정, 「8,000m이상에서는 반드시 산소마스크를 써야한다」는 당시까지의 통념을 처음으로 무너뜨렸다. 1970년 낭가 파르바트(8,125m)등정을 시작으로 1986년 로체봉(8,516m)등정에 이르기까지 메스너는 「자이언트봉」이라고 불리는 지구상의 8,000m급 봉우리 14개를 사상 최초로 모두 올랐다. 자이언트봉을 모두 오른 사람은 메스너를 포함, 지금까지 단 3명에 불과하다. 허씨조차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자이언트봉 등정기록을 세운 메스너는 곧이어 3대 극점 7대륙 최고봉에 도전했다. 허씨보다 5년 앞서 89년 남극점 도보횡단에 성공한 메스너지만 아직 북극점 도보 정복을 이루지 못했다. 95년 3월 북극점 정복에 나섰던 그는 출발 이틀만에 북극해의 난빙대에 갇혀 탐험을 중단해야 했다. 당시 똑같이 북극점 도보횡단에 나섰던 허씨는 56일만에 탐험에 성공했고 곧이어 엘부르즈와 빈슨 매시프 등정에 성공, 메스너보다 먼저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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