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을해년 한해 내내 새로운 발전적 목표의 추구·달성보다는 과거 잔재의 청산과 후유증 극복에 매달려야 했다. 파행적 과거의 청산과 극복을 위한 조치들은 가히 충격적이어서 이미 본란이 지적했듯이 우리 현대사를 뒤틀던 일종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극복하는 하나의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 혁명의 심화가 병자년 새해에 이루어져야 한다.혁명의 심화를 위해서는 파행한 과거에 대한 단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와함께 현 집권층의 자기혁신 노력 또한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적 권리 중심의 근대적 국가관을 정치인들이 확립해야 하며 시민들은 이를 감시해야 한다.
현대 국가는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각종 제도를 만들고 세금을 거두고 노력을 동원한다. 이러한 국가의 활동은 특정한 국가지도자의 개인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능동적이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권리, 즉 시민권(CITIZENSHIP RIGHTS)을 보장해 주기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선진 각국의 정치적 토론에서 핵심적 기준이 되는 시민권 대신에 한국에서는 이론·이념적 근원이 불분명한 통치권이라는 개념이 회자되어 왔다. 집권정치인의 시민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권리를 의미하는 통치권은 절대왕정 시대에나 유효한 개념이며 이 역시 청산되어야 할 과거의 한 요소다. 대신에 시민들이 국가나 집권 정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적 서비스를 내용으로 하는 시민권을 중심으로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시민적 권리 가운데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 사회적 시민권, 즉 물질·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권리다. 새해에는 국민총생산(GNP)에서 시민들의 세금이 차지하는 담세율이 20%선을 넘어서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도 국제적 수준으로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현 정부는 이른바 「삶의 질 세계화」를 구호로 내걸고 집권 후반기에 시민생활의 실질적 향상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들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담들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권, 특히 사회적 시민권의 보장이라는 대원칙이 뚜렷이 천명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다양한 측면에서의 시민권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것이 선진 각국의 경험이며, 우리는 구시대를 결연하게 청산하고 새로운 발전적 변화를 지향하는 혁명의 좌표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고 국가는 정치인의 권력도구가 아니라 시민권의 보장장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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