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첫해… 과거를 살펴보고 미래로/광복 100년 영광의 그날 위해 달리자/눈부신 성장저력 바탕 내실화의 도약을/정경유착·적당주의·절차무시 이젠 버려야/낙후된 정치·시민의식의 선진화도 급선무어느 해보다 충격과 파란이 많았던 을해년이 지나고 이제 1996년이 밝았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지난해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회상하며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존재할 수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근세사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 사고로 기록될 엄청난 일들이 연이어 터진 지난해는 문자 그대로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이기에 여느 해보다도 특별히 되새겨 보아야 할 부분이 많은 것같다.
또 지난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지 꼭 반세기에 해당한다. 8·15해방이 우리 민족의 운명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점에 비추어 8·15해방을 근세사의 하나의 획으로 그어 본다면, 지난해는 1세기의 전반을 끝낸 셈이다.
○시간관리 성공한 셈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민족은 국토분단과 동족간의 처참한 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타민족이 일찍이 이루어 보지 못한 눈부신 경제건설을 성취하였다. 영국의 산업혁명이후 서방선진국들이 약 2백년 걸려서 이룬 산업경제를 우리는 반세기도 채 되기 전에 이루어낼 만큼 무서운 저력을 보였다.
해방 당시 산업이라곤 고작 원시적 영농에 의존한 농업생산 이외에 일제하에 건설한 소비재 생산시설이 약간 있었으나 그나마 6·25전쟁때 공장시설은 거의 파괴되었고 부존자원도 없는 상태에서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원시적 농경구조에서 시작하여 초기의 산업화를 거쳐 후기산업화를 이루고 정보화사회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참으로 단기간 내에 세계가 깜짝 놀랄 초고속성장을 이룬 것이다. 그야말로 한 세기를 접을 만큼 기간의 단축을 실현하여 시간관리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은 조기달성이라는 긍정적인 성과도 있었지만 반면에 우리 사회를 파행과 굴절로 얼룩지게 만든 부정적인 요인도 컸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정신없이 빨리 달려오는 동안 신속한 목표달성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어느덧 결과에 이른 과정과 절차는 무시된채 결과의 성취만이 미덕인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사회는 결과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는 보다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절차가 무시된채 졸속하게 이루어진 결과는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간에 항상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해치게 된다. 한때 경제개발의 강력한 추진을 위하여 민주적 절차보다는 개발독재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인식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또 기업은 경제논리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온갖 경제적 특혜와 이권을 얻어내려고 정경유착에 앞장섰다. 그러다 보니 사회 각 분야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제반 「적법절차」는 무시되고 권력의 재량이 앞서는가 하면,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안전」은 실종되고 말았다. 이러한 풍조는 정치권력의 독재화를 초래하여 정치발전을 가로막게 되고 급기야 정치의 후진성을 가속시켰다.
○지역할거 안타까워
정치권력의 경직과 정경유착은 정치권과 행정관료의 부패를 확산시켰고 부패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부패구조는 속성의 폐습과 함께 곧바로 각종 건설공사의 「불실」로 이어져 국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된 도로, 교량, 기타 공공시설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었다.
게다가 물질우선의 물량적 풍조는 사회구성원 간에 갈등을 증폭시켜 공동체 의식은 멀어지고 개인위주의 이기적인 생활태도로 인간성은 메말라가고 말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던 근로자들은 이제 힘든 일을 피하고 여가를 즐기는데 관심을 둔다. 우리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은 이웃 경쟁국에 비하여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근년에 이르러 지역간의 갈등과 대립은 점점 골이 깊어가는 인상이다. 선거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국정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을 올바로 이끌고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것이라 하지만 선거를 통하여 오히려 지역분할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지금의 양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 볼 때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점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시급하게 개선하거나 시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점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안고서는 결코 선진국의 대열에 끼일 수 없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밝은 미래를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할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은 봉건적 사회체제로부터 근대화를 향한 전진에 급급하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에 쫓긴 나머지 위와 같은 문제점을 시정할 여유가 별로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육박한 지금 앞으로의 도약을 계속하려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는 전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깨달아야 한다.
1996년은 해방된지 50년을 지내고 새로운 반세기를 출발하는 첫 해이다. 즉 한 세기의 절반인 50년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새로운 반세기를 달려야 하는 출발선상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 해이다. 그런 뜻에서 새해는 우리 민족의 진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다시 시작하는 반세기의 첫 걸음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우리의 국운은 좌우된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건 처음 시작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해석할 때, 새해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여느 해와 다른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나온 반세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좋은 점은 더욱 살리고, 나쁜 점은 과감하게 떨쳐버려야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해야 한다. 아니 다짐만으로는 미흡하다. 다짐과 함께 국민 모두가 몸소 실천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의식은 한낱 공허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말로는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잘못을 고치는 실천에 인색한 면이 있음을 솔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이제 이런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우리 사회를 반듯하게 세우는 일에 실천적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 국가를 올바르게 발전시킨단 말인가.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 보고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된 장애요인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어 이것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일에 모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유권자 각성이 먼저
낙후된 정치를 수준높게 끌어올리기 위하여 유권자들은 금권 타락선거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양심적이고 덕망이 있는 유능한 일꾼을 선출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동안 여러 모양으로 왜곡된 선거문화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유권자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과거의 잘못된 선거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선거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금품, 향응 제공이나 지역감정의 대립은 유권자들의 힘으로 능히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공직자가 투철한 사명의식이 결여되고 자질과 능력이 부족할 때, 국가사회에 어떤 해악이 미치는지를 우리는 체험하였다. 특히 대통령의 직위에 있으면서 그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국가의 주요 정책과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하고 국가의 자원을 낭비한 실례를 똑똑히 보았다. 이제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해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져 준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기소는 그동안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랫동안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정경유착이 사라지고 기업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업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게 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문민정부가 추진한 부정부패 추방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부정부패는 국민의 가치관을 훼손하고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좀먹으며 심할 때는 사회기강을 붕괴시킨다. 또 그 폐단은 종국에 국민생활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성수대교등 교량이 붕괴되고 삼풍백화점등 대형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현상은 바로 부정부패의 산물이다.
○국격높이기 총력을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항상 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성과 합리성을 유지해야 한다. 과거 공권력이 권력자의 자의에 따라 행사되어 공권력의 사병화현상이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상실되어 국민의 저항이 빈발하며 법의 집행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준법정신이 해이해지며 법질서 유지에 어려움이 초래된다. 국민에게 법질서의 준수를 요구하려면 먼저 공권력이 적법절차를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 「적당주의」의 폐단 때문에 정당한 절차와 과정이 경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결과보다도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각종 행정절차와 민원처리는 물론이고 건설공사에서 특히 절차가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한때 세계에 명성을 날렸던 우리 건설업계가 「불실」의 불명예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실례다.
새해로부터 시작하는 후반세기는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어느 때보다도 큰 시대적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 반세기가 맨땅 위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초고속성장시대라면 앞으로 진행될 후반세기는 잘못된 바닥을 고르며 탄탄하게 궤도를 깔고 안정된 자세로 안전운행을 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국민소득이 3천달러에 불과할 때와 1만달러가 넘었을 때는 확실히 사회전반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국민의 의식과 행동이 이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사람의 인품과 덕망, 자질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인격」이라는 말을 쓰듯이 국가에도 그 나라의 품격과 신뢰도, 국민성, 발전정도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으로 「국격」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제 새해부터는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데 우리의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세중 변호사 약력◁
▲1935년 서울출생
▲53년 경기고 졸업
▲56년 제8회 고등고시 행정·사법과 합격
▲57년 서울대법대 졸, 육군법무관
▲60∼63년 춘천지법강릉지원, 서울지법판사
▲63년 변호사 개업
▲79∼84년 공연윤리위 위원
▲83년 대한사회복지회 이사
▲87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88년 방송위 심의위원
▲91년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 공동대표
▲93년∼95년2월 대한변호사협회장,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 위원장
▲94년 20% 지방의회 여성참여회 초대회장
▲현재 환경운동연합 대표,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경실련 고문, 시민운동지원기금 이사장, 상사중재원중재위원, 한신대 감사, 동성·예일·운화학원 이사, 한국간연구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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