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바르뷔스의 「지옥」에 나오는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이룩해야 할 특별한 사명도 없고 남다른 운명을 타고난 것 같지도 않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만한 재능도 없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권태로울 뿐이다. ◆소설 속의 이름없는 주인공처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를 보내는 것은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단조로운 반복인 경우가 많다. 송년의 특별한 감회도 없고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해를 맞이하는 것이 인생을 바꾸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1995 을해년은 일상에 파묻혀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넣어 뭔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한 해였다. 사명도 없고 재능도 없고 운명도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이 나라를 생각하며 장래를 걱정해야 했다. ◆폭발 붕괴의 잇단 참사와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등 숨가쁘게 전개되는 현실은 일상을 파괴하고 불안과 번민을 강요했다. 세상일에 상관없이 자기 생활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서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올해 세모는 세기말을 마감하는 것 같은 격동의 한해였다. ◆광복 50년의 감회라든가 건국 50년을 맞는 남다른 각오라든가 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 일반 국민들은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그러나 손때 묻고 정이든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연말이다. 올해처럼 다사다난한 해는 빨리 보내고 새해는 조용하게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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