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JP 신당 창당 4당체제 이합집산/전·노씨구속 5·18특별법등 예상밖 급류95년 정치는 격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파란과 대형 정치이벤트로 점철됐다. 6·27지방선거를 비롯해서 정치지형자체를 뒤흔든 사건들이 꼬리를 이었고 정파와 정치인들도 끊임 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민자―민주의 양당구도가 지금과 같이 신한국당―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의 4당체제로 핵분열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격변의 조짐은 새해벽두부터 잉태됐다. 김영삼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세계화는 정치부문에서 김종필 민자당대표의 「팽」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김대표는 곧바로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자민련을 창당, 새로운 오너로 재기했다.
이동안에 제1야당인 민주당도 이기택 총재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간의 갈등으로 진통을 거듭하면서 역시 변화의 에너지를 축적해가고 있었다.
6·27지방선거는 정치권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올 하반기의 모든 정치적 사건들은 6·27선거결과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만큼 그 파급효과는 심대했다. 민자당의 참패는 민자당의 내부적인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지역등권론기치를 내걸고 지자제선거에 뛰어들었던 김대중씨는 여세를 몰아 곧장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신당창당의 길로 뛰어들었다. 9월5일 새정치국민회의가 출범했고 제1야당은 분열됐다.
4당의 주도권 쟁탈전장이 된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폭로한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은 정가에 태풍을 몰고 왔다.
전국민의 분노속에 노씨의 사법처리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김대중 총재의 노씨돈 20억원 수수 시인을 계기로 92년 대선자금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돼 연말까지 여야의 최대 전장이 되고있다.
김대통령의 5·18특별법제정지시는 또 한번의 상황반전이었다. 전두환씨는 골목성명을 통해 김대통령에게 정면 반발했지만 바로 다음날 고향인 합천에서 압송돼 구속수감됐다. 우여곡절끝에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2월19일 신한국당 국민회의 민주당은 자민련의 반대속에 5·18특별법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어 이수성내각이 출범했고 헌재의 국회의원선거구획정 위헌결정으로 정치권은 세밑에 또한번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다.<이계성 기자>이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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