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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이 판치는 사회(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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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이 판치는 사회(사설)

입력
199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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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이 저물어 간다. 하루밖에 안남았다. 모든 사람들은 송구영신의 감회에 사로 잡혀 반성과 회한에 잠길 그런 순간이다. 올해를 되돌아보면 다른 해와는 유별난 것들이 너무 많다.대구의 지하철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해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5백명이상의 목숨을 앗아가 단일사고로 희생자가 많기는 세계적으로도 기록적인 것이었다. 참사에 못지않게 정치적 사건도 건국이래 최대였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5천억원대의 비자금을 모아 부정축재 한 것이 드러나 철창신세가 됐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12·12와 5·18을 주모한 반란의 수괴혐의로 역시 영어의 신세가 됐다.

이처럼 올 한해는 예측불허 사고와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사람들은 종교에 의탁한다. 유한한 능력밖에 없는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신에게 기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의 불안이 극심하면 종교보다도 무속이 약한 사람들을 더욱 유혹한다. 혹세무민의 세상을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올해야말로 바로 그런 해였다. 지난해 북한의 김일성사망일을 족집게처럼 맞혔고 삼풍백화점붕괴 참변을 정확히 예고했다는 한 젊은 무녀가 자전적 수기를 내놓으면서, 우리 사회는 그 젊은 무녀의 신통력에 명운을 맡기기나 한 듯한 분위기가 됐다. 일부 언론과 외신까지 가세해 「무속만능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 무녀의 책이 30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무녀가 거처하는 산사에 점을 보려는 행렬이 줄을 섰다. 97년까지 점보기예약이 끝났다 할 정도로 무속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망발이고 망령이란 말인가. 인간이 달에 상륙한지 오래다. 무속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무속에 빠지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것 이라지만 여느때보다도 더 유난히 무속이 사람들의 혼을 사로잡고 있다니 우리 사회가 큰 병에 걸린 것은 분명하다.

무녀를 맹신하는 한심한 미신만 탓할 것도 못될는지 모른다. 문제는 무속에 기대는 사회분위기에 있다. 무속에 기댈만큼 불안에 떠는 국민들이 많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정치와 종교가 제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측가능한 정치가 이뤄져 국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종교가 국민들의 영적 삶의 공백을 메워주고 위안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종교가 더 이상 젊은 무녀에게 설자리를 빼앗긴대서야 어찌 이 나라를 현대 문명국가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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