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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연우회의 「볼포네 1995」/이혜경 연극평론가(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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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연우회의 「볼포네 1995」/이혜경 연극평론가(연극평)

입력
1995.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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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함정 보편성의 퇴색아마추어의 공연은 대부분 비평의 관심 밖에 있으나 때로 연극에 대한 열정과 흥행으로부터의 자유로움 때문에 직업극단보다 더 가치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지식인들과 일반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서 드라마전통을 수립했던 영국의 대학극이 대표적 예이고, 좀 더 가깝게는 신극시대부터 서양의 대표적 작품들을 소개해서 한국 현대연극을 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대학동인극단들이 있다.

대학극단은 아니지만 지난 17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제5회 정기공연을 한 화동연우회도 주목할 만한 아마추어극단이다. 경기고등학교 연극반 동문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지속적으로 한국 초연의 작품들을 소개해 왔는데 올해에 공연한 「볼포네 1995」는 특히 관심을 끈다. 「볼포네」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작가이면서 영국 최초의 계관시인이었던 벤 존슨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존슨은 르네상스시대 상업의 중심지 베니스를 배경으로 물질만능주의와 마키아벨리즘에 탐닉하는 인간의 비열한 속성을 동물에 빗대어 통렬하게 풍자한다. 라틴어로 주인공 볼포네는 여우를, 그의 충복 모스키는 시신 주위에 새들을 모으는 파리를 의미하는데 존슨은 이외에도 볼포네 주위를 맴도는 기회주의자들을 독수리, 까마귀, 갈가마귀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390년 전에 씌어진 대본을 어색하지 않게 번안한 이항의 솜씨와 직업연출가 임진택의 인도로 신구 이낙훈, 찬조출연 최형인교수등 프로들과 앙상블을 이루는 동문들의 연기와 후원이 보기 좋다. 무엇보다도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의미는 시의적절한 희극의 고전을 소개했다는 점이다. 권력으로 축재하며 시의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자처하다가 최고의 자리에서 가파른 몰락의 길로 들어선 권력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이처럼 공감이 가는 연극이 또 있을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을 한국상황에 맞게 문어발회장, 송충이비서실장등으로 바꾸었는데 이와 같은 시도는 서양의 고전을 한국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원작의 동물적 이미지가 결말부분을 빼고는 공연중에 일관성있게 제시되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계는 아마추어극단의 미숙함이라기보다는 1995년 한국의 상황이 어떤 연극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가치는 「그들의 악」을 풍자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 안에 들어 있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비쳐주는 일인데 보편성마저 삼켜버리는 현실의 무게와 그 안에서 덫에 걸린 듯 경직된 우리의 사고가 새삼 버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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