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비난·폭탄테러·스캔들·파업사태 등/권좌앉은 첫해 시련의 연속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에게 95년은 극에서 극을 오간 한해였다.
지난 5월 「3수」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생애 최고의 환희를 맛본 그는 이후 내내 한숨을 푹푹 쉬면서 취임 첫해를 보내야 했다. 정부가 야심적으로 벌이는 일마다 거센 도전이 닥쳐왔고 도덕성에 금이 가는 스캔들까지 겪는등 곤욕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의 영광 회복』을 외치며 취임하자마자 내놓은 핵실험재개 선언에 전세계가 보인 부정적 반응은 배짱 좋은 그도 당황할 만큼 거셌다. 시라크는 『금년이 히로시마 원폭투하 50주년이어서 핵실험 재개 시점으로 적당치 않다는 점을 주위의 누구도 내게 일깨워 주지 않았다』고 푸념했다지만 핵실험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적 곤경에 더해 국내에선 알제리 회교 과격파의 폭탄테러가 한동안 끊임없이 일어나 골치를 썩였다. 밀어붙이기로 이름난 그도 시민들이 폭탄에 죽어가는데는 도리가 없어 결국 알제리 군사정권의 제루알 대통령과 면담약속을 파기하는 외교적 무례를 저지르면서까지 회교 과격파들의 비위를 맞춰 주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그가 파리시장 시절 시영아파트를 특혜임대받은 사실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개인적 이미지마저 금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곤궁에 몰아 넣은 것은 경제사회정책에서 야기됐다. 프랑스의 과도한 재정적자가 유럽연합(EU)의 화폐통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자존심 상하는 비난이 주변국에서 빗발치자 재정개혁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추진하다 보니 시라크 자신의 대선공약과 정면배치되는 정책들이 나온 것이다. 대통령은 원래 국방과 외교만 직접 관장하고 나머지 분야는 총리에게 위임토록 되어 있는 것이 프랑스의 제도여서 그에게 곧바로 비난의 화살이 오지는 않았지만 인기는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취임때 역대 대통령중 두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그가 5개월만에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쥐페총리가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려던 복지축소프로그램은 그를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사회분위기가 더욱 어수선해져 출범 6개월만에 부분개각을 단행해 보기도 했지만 별 효험은 없었고 20여년만의 최대규모 파업이 3주일 동안 국가를 뒤흔들자 근로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파리시장시절부터 가장 아꼈고 취임초기만해도 최고의 총리감이라고 자랑했던 쥐페를 지난 개각때 갈아 치우지 않은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파업말미에 실시된 파리마치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시라크의 인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달전보다 5%포인트가 올라 취임후 처음으로 상승국면으로 반전했다. 취임 2년째를 설계할 요즈음의 시라크는 비가 온 뒤에 땅 굳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을 것 같다.<파리=송태권 특파원>파리=송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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