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역사를 생각하며(최상룡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역사를 생각하며(최상룡 칼럼)

입력
1995.12.26 00:00
0 0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역사란 무엇이며, 역사인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95년만큼 정치의 세계에서 역사얘기가 많이 나온 적도 없다. 금년은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50년이 되는 해라 유독 역사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었다. 한일과거사문제에 대해서도 역사인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제잔재의 청산문제가 다시 거론되기도 했다. 5·6공 청산문제는 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으로 그 절정에 올라와 있다.

 과연 역사인식이란 무엇이며 「역사 바로세우기」에서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역사는 전쟁과 평화, 정통과 이단, 보수와 혁신의 흥망성쇠로 점철되어왔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실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5·6공도 분명 한국현대사의 한 부분이며 그 역사적 평가도 다를 수 있다. 그러기에 신한국당, 국민회의, 민주당이 특별법 제정을 찬성했고 자민련은 이를 반대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유해야 할 역사인식의 기본전제이다. 역사인식은 역사적 사실의 확인과 그 확인된 사실의 해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자없는 후자는 허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조작하거나 꿰맞추는 것은 그 자체가 반역사적 행위이다.

○엄정한 사실 확인

 따라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엄정한 사실의 확인이다. 이를테면 5·6공의 경제적 업적이 5·6공 창출과정에서 밝혀진 특정인의 비리나 5·6공 전직대통령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면 우선 사실부터 엄정하게 밝혀야 한다. 헌정질서의 파괴, 반인도적인 학살, 가공할만한 부정축재, 이 모든 것을 밝히고 응분의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은 당연 이상의 당연이다. 정치적 관용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역사해석이 다양하고 헷갈릴 때일수록 흔들림없는 잣대는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사실은 하나의 신과 같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신」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의 국력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수출 1,000억불이 될 만큼 산업화를 이루었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군사쿠데타의 재발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질 정도로 민주화의 방향이 잡히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한국인의 두 가지 저력,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효율도 한 몫을 했다. 우리나라는 그 권위주의의 주도세력이 군부였던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리관유(이광요)의 지도력이 크게 기여했고, 지금의 중국은 사회주의적 권위주의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민주적 가치관에서 보면 산업화의 추진세력은 군인보다는 민간인이 정상적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그 업적을 인정하고 있는 박정희시대의 산업화정책을 두고도 박정희의 개성과 지도력에 공을 돌리는 긍정적 해석과 그 시대의 민간대통령이었어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라는 부정적 해석도 있다. 아무튼 박정희 정권은 반민주적이면서 나라의 방향을 산업화쪽으로 확고히 돌려놓았던 최초의 정권이었다. 민주화는 바로 이 산업화의 구조속에서 움텄고,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는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경제의 산업화와 정치의 민주화는 모순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상호보완관계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산업화의 추진세력과 민주화의 추진세력 간에 엄청난 갈등을 빚고 있다. 물론 이 두 세력이 다 크게 보면 우리 국민의 저력이긴 하지만 아직도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러나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큰 업적으로 기록할 것이다. 박정희는 반민주정권으로 출발하여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민주화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 역설의 인물로 끝내 비극적인 삶을 마쳤다. 구조적으로 보면 전과 노는 박의 나쁜 유산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전·노의 범죄와 비리 때문에 박정권이래 군부권위주의체제가 이룩한 산업화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군사정권을 역사로서 객관적으로 기술한다는 것과 군사정권의 구체적 비리사실을 척결하는 문제는 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해석과 정치적 관용은 어디까지나 사실의 엄정한 확인 위에서 가능하다. 1996년을 맞으며 평균적인 우리 국민은 역사의 시비는 분명히 가리되 좀 더 믿음직하고 예측가능한 정치를 바라고 있다. 하루 빨리 나라의 중심을 바로잡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국민의 잠재력을 통합하여 멀지 않아 들이닥칠 통일국가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큰 정치는 역사를 생각하며 내리는 사려깊은 선택이어야 한다.<고려대 아세아 문제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