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제재완화·수교 지연요구/대북대화재개 등 대책도 모색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합의가 타결됨으로써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간 진전속도의 괴리는 상당부분 기정사실화됐다.
지난 15일 경수로공급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연락사무소 개설등 북·미관계의 추가적 개선은 이미 예견돼 왔다. 정부도 지난 12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고위전략회의 이전에 이같은 미국측 입장을 통보받고 대비해온 것이 사실이다.
94년 10월21일 북·미 제네바합의는 양측간 연락사무소 설치와 함께 「상호관심사의 진전에 따른 대사급 수교」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은 이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선언」실행을 위한 남북대화의 재개도 명시적으로 합의했다.
우리측은 당초 이를 남북대화 재개와 북·미관계 개선이 연계한 것이라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측의 완강한 거부로 「조화·병행」이라는 표현으로 후퇴했다.
북·미 양측은 지난해 12월6일부터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전문가회의를 개최해왔다. 내년 상반기중 평양과 워싱턴에 개설이 실현될 경우 교섭개시로부터 1년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이 기간에 남북간에는 3차례의 베이징 쌀회담과 뉴욕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 회담에서의 간접대화등이 있었지만 우리측으로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수준의 대화재개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2단계 완화조치, 대사급 수교회담의 개시등과 관련해서는 시기를 최대한 지연하도록 미국측에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우리측은 미국, 그리고 일본의 대북접근이 가속화함에 따라 남북관계를 어떤식으로든 개선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구도에 다시 빠져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경우 남북대화재개의 유일한 접점은 쌀등 식량지원 문제이다. 이와 관련, 남북한 어느측도 3차까지 계속됐던 베이징 당국간회담이 공식적으로 종언됐다고 선언치 않고있다는 것은 주목되는 사실이다.
북한측을 보면 이같은 우리측의 딜레마, 그리고 대미·대일관계 개선을 서두르기 위해 계획된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에서 경수로공급협정체결 협상에서 북측이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타결을 서둘렀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리측과 대화를 재개한다면 오직 식량지원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한 주변여건을 조성해 나간다는 의도가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의 한미 고위전략회의에서 우리측은 미국측에 대해 내부 정치일정등을 들어 대북관계 개선조치를 내년 중반기 이후로 늦춰주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양측이 이미 부지선정, 통신, 영사권등 세부사항에 모두 합의했으면서도 이를 내년초 시기를 늦춘 것은 이같은 입장이 어느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식량수출 허용등이 포함된 경제제재조치 완화시기등 추가조치들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한미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어떤 경우든 남북관계에서 우리측 입장의 수동적 성격이 강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정책노선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같다.<유승우 기자>유승우>
◎미국 입장/대북한관계 독자행보 의지/선거앞둔 클린턴 「외교업적」 마무리 인식/동북아전략 관련 중국견제 「지렛대」뜻도
미국이 내년초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이를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은 미국의 대북한 입장을 공론화함으로써 한국정부에 대북 강경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라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은 당초 북·미 대화의 진전을 올 상반기 수준에서 동결했었다. 당시 북한은 워싱턴DC내 모처에 연락사무소 부지를 물색했으며 미국은 이번에 합의된 바와 같이 평양시내 구동독대사관자리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지난 가을 이후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국정부가 미국측에 신중한 대북접근을 요청했고 미국은 나름대로 한국정부와의 관계를 고려, 한국정부의 양해없는 대북접근을 자제해 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국무부 관리들의 비공식 발언들을 통해 북한이 이른바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미국은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계속 강조해 왔다.
따라서 이번 연락사무소 설치 결정 통보는 미국이 북한을 「한미관계의 종속변수」로서만 다루어왔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대북관계를 점차 독립변수로 다뤄 갈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클린턴행정부의 외교정책과도 무관할 수 없다. 최근의 국무부 발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외교 현안은 크게 3가지였다. 중동과 보스니아 그리고 북핵동결에 의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중동과 보스니아의 평화정착은 최근 클린턴 외교의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만큼 진전을 이루고 있다. 반면 북한핵문제로 대표되는 동북아의 평화정착은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설치의 교착으로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북·미간 협상을 일단락 짓는 것이 클린턴 외교의 마무리작업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미국이 최근 남북 대화의 중요성을 수차례 역설하고 나선 것도 이번 조치와 궤를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국내사정을 들어 한동안 대북강경책을 고수해온 것에 대해 내심 불만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남북간의 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북·미간 접근은 불가하다는 한미간 기본입장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자체 분석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에서는 북한을 미국의 대중국관계에 대한 「역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관련, 중국을 견제하면서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데 대북관계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에 다소 「독자적」으로 대북관계를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한국정부에 대북정책의 재고를 요청하는 한편 중국에 대해서도 카드를 던져 보였다고 할 수 있다.<워싱턴=정병진 특파원>워싱턴=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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