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적 통치행태 국민 등돌려/자신이 임명한 총리를 간첩으로 모는등 좌충우돌레흐 바웬사에게 올 겨울 바람이 유난히 차갑다. 바웬사는 23일 폴란드 국회에서 거행되는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 대통령당선자의 취임식에 초대받았다. 「전직 대통령」의 자격이지만 그는 패배자임을 쓰디쓰게 절감할 것이다.
바웬사는 요즈음 끝을 모른채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개혁한 공산당」후보에게 패배했다. 그는 상대방이 학력을 속였다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크바스니에프스키의 손을 들어줬다. 이취임식에도 불참하겠다고 말해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지난 20일에는 자신이 임명했던 총리를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첩자였다고 폭로하는등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폴란드 세무당국은 22일 바웬사의 은행계좌를 동결하고 다른 개인 재산에 대해서도 가압류 조치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바웬사가 89년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는 대가로 받은 100만 달러에 대해 세금을 정당하게 내지 않았다는 이유다.
바웬사의 퇴장은 한 시대의 마감을 뜻한다. 그의 이름이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의 대명사가 됐던 한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그의 패배는 동유럽의 보수회귀 물결과도 무관하지 않다. 93년 이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총선에서 개혁한 공산당이 승리했고 17일 러시아 총선에서도 공산당이 제1당이 되었다.
바웬사는 체질상 투사였지 새 시대가 요구하는 통치자는 아니었다. 그는 80년 공산정권에 맞서 파업을 승리로 이끌며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고 83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90년 대통령 당선후 독선과 아집, 본인의 말대로 「평생 책 한 번 읽지 않은 중졸학력의 100% 노동자」로서의 무능과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로 일관했다. 의회를 3번 해산했고 내각을 5번 교체했으며 총리를 6명이나 갈아 치웠다. 급진개혁이 의회서 제동이 걸릴 때마다 벼랑끝 대결을 벌였다.
결국 93년 총선에서 민주좌파연합에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패인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독선적 통치행태는 계속됐고 바웬사만큼은 저버리지 않을 것 같았던 폴란드 국민들도 이번에는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바웬사는 결정적 패인이었던 중도·우익정당의 분열을 봉합, 97년 대선서 설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의 나이는 이제 52세. 현실정치로부터 떠나 회고록을 집필할 나이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자신의 지지세력을 핵분열 시킨 그의 독선적인 스타일에 질려 있다. 크바스니에프스키대통령이『새정부의 우선 과제는 헌법을 개정,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동안 폴란드 국민들이 바웬사의 독선에 얼마나 질려 있었던가를 반증한다. 평소 『나는 깊이 생각하는 것은 질색이고 행동으로 보여주길 좋아한다』고 말한 바웬사지만 권토중래를 위해서는 이번 겨울만큼은 패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부터 해야 할 것 같다.<조상욱 기자>조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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