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또 하나의 세금(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또 하나의 세금(장명수 칼럼)

입력
1995.12.23 00:00
0 0

노태우 전대통령의 재임중에 수십억, 수백억원의 뇌물을 바친 혐의로 법정에선 재벌 총수들은 그 돈이 뇌물이 아니었다고 우기면서 각기 색다른 주장을 폈다. 『해외에서 큰 공사를 딴 후 국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돕기 성금을 냈다』는 감사헌금론, 『3공이래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바치는 것이 관례였고 그 돈은 일종의 세금이라고 생각했다』는 세금론, 『우리 기업을 최소한 밉게 보지는 말아 달라는 뜻에서 돈을 바쳤다』는 보험론등이 나왔다.그들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절대권력을 쥐고있는 대통령이 기업인들로부터 비자금을 거둬들이는 상황에서 사업을 하자면 감사헌금이든, 또 하나의 세금이든, 보험금이든 간에 돈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자금 파문으로 경기가 냉각되면서 이웃돕기 모금이 매우 부진하고, 불우이웃들이 썰렁한 연말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대통령들의 사법처리라는 엄청난 홍역을 치르느라고 온 나라가 뒤숭숭하고, 대기업들이 한결같이 위축돼 있다보니 불우이웃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불우이웃 돕기에 대한 생각을 새로 정리해야 한다. 이제 기업들은 절대권력자에게 바치던 막대한 정치자금을 다른 형태로 사회에 돌려야 한다. 불우이웃을 위해 내는 돈이야말로 감사헌금이고, 또 하나의 세금이고, 보험금이다. 물론 이웃돕기는 기업만의 몫일 수 없으며, 우리 모두에게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아야 한다.

한 주부가 일년의 가계부를 정리한후 이웃돕기 성금을 따로 계산하여 봉투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 꽃동네, 선배가 하는 보육원, 모교의 장학기금등을 해마다 연말에 몰아서 보내곤 하는데 이 일을 할때 비로소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온가족이 한해를 무사히 넘기고, 우리집 수입의 작은 일부를 이웃에게 보낼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나는 신앙인도 자선가도 아니지만, 연말에 보내는 작은 성금들을 통해서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요』

세모의 거리에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리고, 도움을 원하는 많은 얼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부모없는 어린이들, 돈없는 환자들, 돌봐줄 사람없는 노인들,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외로운 이들, 그리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 그들의 손을 잡을때 우리의 생은 사랑속에 뿌리 내릴 것이다. 비자금 파문속에서 우리는 생활의 거품을 걷어내고 우리가 정말로 감사의 세금을 바쳐야 할 곳이 어딘지를 찾아야 한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