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역사 바로세우기와 언론(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역사 바로세우기와 언론(한국논단)

입력
1995.12.21 00:00
0 0

이번 가을 겨울이 문화예술, 출판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장사」가 안 되는 계절이었다고 한다. 비자금사건이 터지고부터는 연일 만원사례를 구가하던 연극이 썰렁하니 비기 시작하고 영화관도 한산해지고 특히 책은 심각할 정도로 안 팔려서 출판계가 근심중이라고 한다. 반면에 신문 방송은 아주 호황을 누린다는 것이다. 비자금, 5·18청산등의 문제가 얼마나 국민의 관심을 독점하고 온 나라를 회오리 속에 몰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충분히 납득가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른 방향으로의 관심인지 그 관심의 강도가 정상적인 것인가에 있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최근들어 우리나라에는 큰 사건도 많았지만 웬만한 사건이나 관심사가 생기면 나라가 작은 탓인지 온 나라가 들끓는 체험을 많이 해 왔다. 물론 그중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도 많았다. 그러나 대도같은 좀 신기한 도둑이 출몰해도, 좀 재미있는 드라마가 하나 등장해도 온 국민의 시선과 관심이 그리 집중된다. 그 관심사는 온 국민을 관객으로 하는 한국이라는 극장무대의 흥미 진진한 스펙터클이 되어 흥밋거리가 소진될 때까지 관심을 독점하게 된다. 관객들은 때로는 그렇게 휘둘리는 것이 지겨워서 진저리를 내면서도 습관성 중독증에 걸린 것처럼 다음번에는 좀 더 큰 자극을 은근히 기다리는 심경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 가지 대상에 온 국민의 관심집중이 잘 되는 나라도 있을까 싶다. 복잡하고 다원화한 현대국가가 아니라 마치 작고 단순한 근대 공동체사회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간단히 진단해 내기는 어렵지만 언론은 아마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이 한국식의 회오리 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사건 발생 자체에 언론이 책임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고 오늘날같은 대중매체시대에는 언론이 그 사회적 의미의 방향성이나 중요성의 정도를 틀지우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치열한 보도경쟁

신문가짓수나 방송채널이 한정되어 있었던 시대에나 많이 증가한 지금이나 신문 방송들은 극적인 사건이 터졌다 하면 서로 경쟁적으로 전국의 관심을 그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신문, 방송채널의 수가 증가했어도 상황이 나아지기보다는 치열한 보도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오히려 악화되어 버린 것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선정성의 경쟁마저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경우는 1면을 장식하는 굵은 헤드라인과 여러 기둥의 기사로 만족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그런 사건일수록 관련기사가 수록된 페이지가 10여개 가까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그 무수한 페이지가 고급지다운 심층보도로만 메워져 있는 것은 아니고 사소하고 지엽적인 내용, 때로는 저급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흥밋거리에도 상당한 지면이 할애된다. 구속된 전직대통령의 부인은 파출부에게 팁을 얼마 주었고 어느 식당에서 밥은 무엇으로 먹었고, 누구는 쩨쩨한데 다른 사람은 그래도 의리의 사나이에, 통이 커서 주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가등 심심풀이용의 화젯거리가 허다하다. 이런 화젯거리용의 신문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고급 전국지를 지향하는 신문들 간에 벌어지는 경쟁적 발굴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방송의 경우는 뉴스시간의 연장에서 특집처리, 중계방송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쓸 데 없어 보이는 곳, 쓸 데 있어 보이는 것을 막론하고 찍어 보내는데 여념이 없다. 피의자가 된 전직 대통령의 검찰출두과정을 헬리콥터까지 띄워 중계해야 할 필요가 무엇인가? 재판정에의 침통한 출두시 표정을 끊임없이 반복해가며 클로즈업해서 무슨 정보를 얼마만큼 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정작 「역사」가 아닌 「사람」에 계속 관심을 분산시키고 그것도 선정적으로 다루게 되면 흥미끌기는 되겠지만 역효과는 심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제의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아슬아슬하고 힘들기 짝이 없는 문제의 핵심이 흐릿해지고 인물 됨됨이의 비교 따위가 세인의 관심을 끌어 정치보복과 모욕 갚아주기의 저급 복수극처럼 비치게 되고 당치 않은 동정심까지 유발하게 되어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만 착잡해진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수록 언론은 국민이 흥분해서 휘 말리지 않고 각자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중심잡기를 도와야 한다. 주변환경이 온통 감각적이 되어가고 정치조차 상당부분 선정성에 의존하는 오늘날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선정보도일 것이다. 문제의 알맹이와 껍질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박명진 서울대교수·언론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