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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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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1월15일 상오 고 윤보선전대통령이 수도경비사령부의 계엄보통 군법회의 법정에 나타났다. 민주화 일정을 앞당길 것을 촉구한 서울 명동 「YWCA 위장결혼식」사건의 불구속 피의자로 재판을 받기 위해서였다. 검정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왼손은 상의 주머니에 넣은 단아한 차림이었다. 83세란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했다. ◆여러 젊은 피의자들과 똑같이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았으면서도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재판장이 그의 발언을 차단하면 「재판장 내말 들어요. 나도 한때는 국군통수권을 가졌던 사람이야. 젊은 사람들이 수사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는데…」 하며 호통을 쳤다. ◆재판이 며칠 계속되는 동안 윤전대통령은 개정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출정했다. 방청객이나 피의자 가족들은 「저 어른 오늘도 나오셨구먼」하면서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군당국은 출정치 않아도 되는데 꼬박꼬박 나온다고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18일 노태우전대통령이 법정에 섰다. 안정감이 결여된 노전대통령의 이날 법정태도는 윤전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질타한 윤전대통령은 쿠데타로 하야했지만 전직대통령으로서의 당당함과 의연함은 법정을 완전히 압도했다. ◆우리나라 전직대통령들은 망명 피살 구속되거나 집안에 은둔해 증언을 거부하는 등 일그러진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다. 아무리 법정에 서야 하는 신세가 됐더라도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국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의연함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한번쯤 찾아뵙고 싶은 훌륭한 전직대통령을 언제쯤이나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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