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독대 1시간여 “막판까지 예측불허”/경제부총리 희망한 한전실장 총선차출/나부총리 민자시절 강한인상 강점작용철저한 보안, 의외성이 12·20 개각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개각 발표를 바로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이 이수성 총리와 독대하는 시각까지도, 대강의 윤곽조차 오리무중이었다. 김대통령이 독대전에 개각내용을 일절 함구한 이유는 삼고초려한 이총리를 예우하고 총리의 제청절차를 존중한 배려라는 게 중론이다. 김대통령과 이총리의 독대가 예정보다 길게 상오 9시30분부터 1시간 가까이 이루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개각의 「빅3」은 나웅배 경제부총리 권오기 통일부총리 김광일 청와대비서실장 등으로 하마평에 거론되지 않은 인사들이었다. 「빅3」중 김대통령은 비서실장의 점지에 고심한 흔적이 짙다. 우선 한승수 전비서실장을 경제부총리에 기용할지, 춘천에 출마시킬지를 놓고 숙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전실장 본인은 경제부총리를 희망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감안, 한전실장을 강원도의 「간판타자」로 차출키로 하고 지난 17일 청와대로 불러 출마를 권유, 설득시켰다.
한전실장, 홍재형 전경제부총리의 총선차출로 비게 된 경제총수에는 박재윤 통상산업장관이 유력했었다. 청와대 고위인사들도 하루 전날에는 「박부총리」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박장관이 부총리에 오르지 못하자 그 배경으로는 경제팀의 팀워크, 교수출신에 대한 「과천 관료집단」의 견제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나부총리의 발탁은 6공 초대 경제부총리로 신선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나부총리가 믿을만한 경제통인데다 김대통령의 민자당대표시절, 정책위의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중용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권오기 통일부총리는 김대통령이 두 세차례 청와대로 불러 입각을 제의했다. 노태우씨와 경북고 동기인 그는 6공시절에도 여러차례 입각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했으며 이번에도 거듭 고사하다가 지난 주말(16일) 수락했다. 김대통령은 권부총리에게 보안을 당부, 회사 간부들에게도 「힌트」를 주지 않았다.
청와대비서실장도 적지않은 곡절이 있었다. 정국흐름이 급박해지면서 비서실장의 조건으로 충성도와 함께 정치감각, 법적 지식 등이 부각됐다. 처음에는 김우석 내무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다가 김광일전의원으로 선회한 것도 새롭게 요구되는 조건 때문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김실장은 3당합당때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아 그 당시 김대통령이 매우 아쉬워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김실장은 지난해 고충처리위원장에 임명되면서 3당합당 불참의 「면죄부」를 받았다. 그는 며칠전 비서실장 제의를 받았으나 극구 고사했다가 이날 상오 발표직전 통보를 받고 명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기춘 전법무장관도 거론됐으나 「초원복국집 사건」의 멍에가 아직 가시지 않은데다 경남고·거제출신이라는 연고때문에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전장관은 언젠가 중용될 「히든카드」로 평가받고 있다.
박영식 전교육장관의 경질은 예상을 뒤엎은 인사였다. 그는 임명된지 몇달 안돼 유임이 유력시됐으나 서울대 국책대학원 지정을 둘러싸고 이총리와 박전장관의 갈등이 있다는 점이 참작돼 경질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무1장관은 한승수전실장의 춘천출마로 지역구를 양보해야 하는 이민섭 의원이 거론됐으나 이의원이 이를 사양, 주돈식 장관으로 낙착됐다. 정종택 환경장관은 청주갑구로 출마하는 홍재형전부총리가 지구당위원장인 그를 배려해야 한다고 김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해 발탁됐다는 게 정설이다. 김양배 보건복지장관은 의약, 한약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면서 이를 철저히 처리할만한 능력자로 평가받아 다시 기용됐다. 김장관은 4개월만에 농림수산부장관에서 물러나야 했던 「과거」를 이제야 보상받게 된 셈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선의 경우 박수길 유엔대사의 귀국이 한때 외교안보수석의 교체로 해석되기도 했다. 또 사회복지수석은 김대통령이 강조해온 「삶의 질」정책의 맥락에서 신설됐고 그 입안자인 박세일 전정책기획수석이 발탁됐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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