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안일한발상 여전해 해법 소극적/지원책 쏟아져도 실제성과 가물의 콩1995년은 두가지 점에서 중소기업들에 아주 인상적인 해였다. 하나는 근래에 보기 드문 「획기적」중소기업정책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중소기업들은 무수히 쓰려졌다는 사실이다. 이 역설적 상황은 중소기업의 병세가 백약무효일만큼 절망적이거나 아니면 처방 자체가 잘못됐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과거엔 중기정책이란 없었다. 90년대초 중소기업 연쇄도산속에 기업인 자살사태까지 빚어졌어도 정부는 「거품의 소멸과정」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중소기업의 중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 점에서 현정부의 중소기업관은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다. 특히 올들어선 거의 한달이 멀다 하고 굵직한 중소기업관련 대책이 만들어졌다. 상업어음할인제도개선 자본재산업육성 상업차관허용 신용보증확충 조세감면확대등이 잇따랐고 「제조업 제일주의」에 가려 홀대받던 건설·유통업도 금융·세제지원을 받게 됐으며 아예 중소기업특별법까지 제정됐다.
그러나 실상은 달라진게 없다. 정책효과가 가시화하려면 1∼2년은 기다려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중소기업의 미래는 극히 비관적이다.
「결실없는 대책의 홍수」는 정부의 중기관에 의문을 제기케 한다. 9%대 초고성장 국면에서 진행되는 최근의 연쇄부도는 92년 불황기의 도산사태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내엔 아직도 『중기부도는 폐쇄경제→개방경제, 독과점질서→경쟁질서로 이행되는 구조조정과정의 불가피한 현상』이란 「한계기업 퇴출론」이 팽배해 있다.
『쓰러지는 만큼 새 기업이 생겨나고 있으니 국민경제의 신진대사가 원활한 셈』『노동력 공급여력의 고갈상태에서 부도는 오히려 인력난 경감의 순기능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있는 접근이지만 지금 추세라면 모든 업체가 한계기업화하고 구조조정의 성공에 앞서 국민경제적 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암울한 중기현실에 비해 해법이 너무 소극적이라는데 있다. 대통령이 중기대책마련을 지시하면 불과 며칠만에 훌륭하게 포장된 방대한 정책이 만들어지지만 평소엔 부처간 마찰, 심지어 같은 부처내 실·국간 이견으로 한건 한건이 수개월씩 공전을 거듭하기 일쑤다. 자본재산업육성대책 중소기업특별법 현금결제확대방안이 모두 그랬다. 그나마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았더라면 관료풍토상 변변한 중기지원책 하나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원칙의 실종도 자주 발견된다. 중소기업의 병을 근원치료(자생력기반확충)하기보다는 응급수혈(자금살포 세금감면)로 연명케 한다. 게다가 선거때면 예외없이 돈을 풀고 세금을 깎는 빈도가 잦아진다. 보고용 정책, 선심성 정책에 실효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환상일 것이다.
중기자금난을 금융관행차원으로 축소하려는 태도도 일종의 직무유기다. 전당포식 담보관행이 국내금융의 고질적 병폐이긴 하나 신용없는 영세기업에 담보도 없이 싼 금리로 돈을 꿔주라는 것은 민간기업인 금융기관에 손해를 보고 장사하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금융의 정책화는 자금배분왜곡을 초래, 중소기업자금난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양극화가 국민경제 존폐문제로 떠오른 지금 중기지원은 정부, 즉 재정의 몫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년 예산(일반회계 58조원)중 국민총생산(GNP)의 7%에 불과한 농업엔 8조원 넘게 쓰이는 반면 14∼1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엔 고작 2조원이 지원된다. 국가재원배분의 우선순위가 어딘가 잘못된 상황이다.
행정력의 과도한 경제개입은 경제주체의 정부의존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기현실은 정부의 침묵과 방관, 낡은 발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개별기업의 생사는 그 기업의 운명이지만 국민경제의 뿌리가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 최종책임은 정부로 돌아가는 것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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