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유럽의 사회주의 회귀 조류는 17일의 러시아 총선에서도 확인됐다.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모두 4백50명을 뽑은 국가두마(하원)선거에서 강력한 통제경제와 소련의 부활을 공약한 공산당이 원내 제1당으로 진출했다. 이번 선거는 옐친 대통령의 건강문제와 함께 정치정세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실시된 것이어서 내년 6월로 예정돼 있는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공산당과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1, 2위를 차지하고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이끄는 현정부의 우리집러시아당이 제3당으로 전락한 선거결과는 소련 붕괴후 개혁을 추진해 온 옐친 대통령의 실정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공산독재체제에 진저리를 치던 러시아 국민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이어 등장한 옐친의 개혁정권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옐친 정부의 급격한 민주개혁과 시장경제 도입은 자유민주제도에 훈련되지 않은 러시아인 사회 곳곳에 체증과 혼란을 유발했다.
경기침체와 물가고가 서민경제를 위협하는 가운데 범죄와 마약, 매춘 등 사회악이 만연하고 있는 실태는 얼마 전 모스크바의 현대전자 연수사원 집단인질사건 때도 집중 보도돼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공산당 당수 겐나디 주가노프는 최근 『교수 월급이 1백달러에 불과하고, 농부는 작물을 넘기고 반년이 넘어도 대금을 못받는다. 실업자가 2천만명에 달하고 3천7백만명이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의 도입은 공산독재 하에서 자치와 경쟁의 경험이 없었던 사회에서는 뿌리를 내리는 데까지 많은 인내와 시련이 요구된다. 러시아 국민은 그러나 그 고통의 과정을 참을 수 없었고, 그것은 바웬사를 몰락시킨 최근의 폴란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이미 다른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 회귀로 확인된 바 있다.
러시아 의회에 공산당이 제1당으로 진출했다 해서 그것이 곧 러시아의 공산화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세력이 전체의석의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다른 정당들과 제휴하지 않는 한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옐친 대통령 정부를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현재의 정치혼란이 계속될 경우 내년의 대통령 선거 역시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러시아 공산당의 진출은 중국 베트남 쿠바 등 다른 공산주의 국가나 특히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도 적지않은 외교적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주가노프 당수는 대외적으로 러시아 외교의 계속성을 다짐하고 있지만, 러시아 공산당과 북한의 교류는 지금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외교의 세심한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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