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말은 기나긴 쇼핑시즌이다. 10월말 할로윈 데이만 되면 상점들이 일찌감치 「할로윈 세일」로 분위기를 띄운다. 11월말 추수감사절 이후부터는 이른바 「몰 매드니스(Mall Madness)」로 묘사되는 광란의 쇼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할로윈 세일」「추수감사절 세일」 「크리스마스 세일」도 모자라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까지 각종명목의 판촉을 통해 소매업체들이 연말 두달간 팔아치우는 액수는 연간매상의 절반가까이나 된다.연말쇼핑이 길고 화려하다는 것은 돈없고 외로운 사람들의 추위도 길다는 말이다. 「풍요의 나라 미국」에서도 거지는 거지고 가난한 사람은 춥고 배고프다. 없으면 없는대로 친척·가족끼리 의지해 살아가는 성격들도 아니어서 서러움도 더할 것이다.
불우한 이들의 이러저런 사정을 잘 헤아리고 있어서인지, 쇼핑하고도 돈이 남아서 그러는지, 위화감이 깊어지면 폭동나기 십상이란걸 겪어봐서 그러는지, 하여간 미국인들은 쇼핑틈틈이 「그늘진 곳」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들이 연간 각종 단체에 기부하는 금액은 총1,080억달러, 1인당평균 432달러에 달한다. 4인가족기준으로 치면 한집당 우리나라돈으로 138만원돈을 선뜻 생면부지 남에게 건넨다는 계산이다. 백화점수입이 그러하듯 기부금도 연말에는 훨씬 늘어난다. 기부금뿐 아니라 우편배달부 청소부등 궂은 일을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연말이 되면 카드와 함께 5∼10달러정도의 성의표시를 하는 것이 생활화돼 있다. 이들에게 연말은 쇼핑의 계절이자 기부의 계절이다.
한국에서도 돈 1,000원이 아쉬웠던 시절엔 「회원도 아닌데 웬 적십자회비냐」고 목청을 돋우던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쇼핑할정도 여유는 생겼다고 생각된다면 조금씩은 나누고 살아야 할 것같다는 자성도 해본다. 올해는 유난히 쇼핑객들의 코트자락 스치는 바람이 비자금의 삭풍에 얹혀져 추운 이웃들을 한층 썰렁하게 할 것같은 계절이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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