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성 신임총리는 비자금사건이 터졌던 며칠후 신문기고에서 우리는 꼭 넘어야 할 준령 앞에 서 있다고 비유한 바 있다. 정녕 오늘의 상황은 바로 그것이다.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은 그 부작용으로 정국의 혼미와 동요, 가치관 전도등의 큰 상처를 안겨주었으니 하루빨리 아물게 할 일도 현정부가 당면한 큰 과제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근래 「법의 지배」의 실현과 「법치주의」의 정착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역사 바로세우기」작업이란 결국 폭력의 지배를 배격하고 권력형 무법자를 엄단한다는 의지의 실천에 다름아닌 것이다.○법집행 혼돈없게
한편 법을 어기는 자를 다스림에 있어 여론에 밀려 실체법이든 절차법이든 실정법이 왜곡적용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를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 작금의 뒤엉킨 사회분위기나 명분에 대한 축소평가는 법집행과정의 혼돈이 그 요인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가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겠다면 우선 법질서의 정립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법치적 안정이 이룩되어야 한다. 다행하게도 새 내각을 이끌어갈 이총리는 평생을 법학교육에 헌신한 교수이며 공법학자이다. 이제 대학강단에서의 법이론적 소신을 그의 국정운영에서 펴나가야 할 위치에 서게 되었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그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가지며 국회에 대하여 행정 각부의 통할자로서의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행정각부의 통할의 의미와 정부조직법의 모호함 때문에 국무총리의 위상에 대해 거론의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국정처리에 관하여 제2인자적 지위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얼마전 국무총리가 그 직무수행에 관해 법대로의 운영을 강조하다가 김대통령의 노여움에 부딪쳐 「통치권에 대한 도전행위」라는 얼핏 수긍하기 어려운 공격을 받아 사퇴하게 된 사례가 있으나 현행 헌법이 정부권한에 속하는 중요 정책을 다루는 국무회의를 심의기구로 격하시켜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의는 대통령에 의해 존중되어야 하고 뚜렷한 거부명분 없이는 그대로 집행되어야 함이 헌법이 바라는 바이므로 이러한 일련의 제도는 모두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고 행정수반에 대한 보좌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출범 이후에도 우리들의 눈에 비치는 국무총리의 위상은 군인정권시대와 별로 다를 바 없이 정부 내부에서는 행정 각부의 업무조정에 그치거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교체되는 자리만으로 보여지고 오히려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필함을 그 직무로 하는 비서관들의 국정운영상의 역할이 크다는 세론이다. 김대통령정부 이후 개혁추진에 있어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한 중요정책의 변환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국민들은 그 정책 수립과정에서 헌법상 정부기구의 공식관여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다. 12·12나 5·18 사건처리에 있어서도 그렇다. 지난날의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불기소처분도 그렇고 최근의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이나 그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도 분명히 정부의 중요정책 전환임에 틀림이 없다.
검찰이 공익을 대표하는 준사법기관이므로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하겠지만 제도적으로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이 그 최고감독자이고 그는 대통령의 보좌기관인 동시에 대통령의 명을 받은 국무총리의 통할 아래 놓여 있으며 그 정책은 국무회의의 심의사항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제도는 미국식 대통령책임제와는 그 성격이 다르며 국회에 대한 관계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행정부 내의 국정수행에 관한 기구의 구성과 그 정책결정절차가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안정에 중점둬야
지금 외국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자못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고 내년 15대총선을 앞두고 정국의 일대 혼란을 걱정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과거역사청산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이 때에 이제부터의 국정방향은 우선 안정에 그 기조를 두어 미시적 안목만으로 조급하게 서두름이 없이 전진을 다소 멈추는 일이 있더라도 차분하게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정돈과 재정비를 거쳐 새로운 출발을 하여야 한다. 그 일환으로 국정집행의 방법에 있어서도 헌법제도에 보다 충실한 운영이 이루어져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임도 두터워질 수 있고 우리의 염원인 민주제도의 정착도 빨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신임총리를 비롯한 새로 짜여지는 내각은 청와대쪽의 눈치만을 살피는 일이 없이 국정전반에 걸쳐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는 용기와 예지를 발휘해야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한 보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법치행정의 길을 활짝 열어나가도록 다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변호사·전대한변협회장>변호사·전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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