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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가횡포·늑장결제에 “허덕”(중기는 지금 중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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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가횡포·늑장결제에 “허덕”(중기는 지금 중태:4)

입력
199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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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파괴 부담 전가 대기업들만 생색/“현금지급” 말뿐… 거래선뺏길까 눈치만구로공단에서 냉장고 부품을 생산하는 K사는 최근 대기업인 Z사로부터 납품가를 5∼10% 낮춰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하청업체 협력이 필요하다. 다른 업체도 모두 납품가 인하를 약속했다』는 Z사의 「부탁」이 K사에는 『협조하지 않으면 거래선을 바꾸겠다』는 「엄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대기업으로부터 원료인 파라자일렌(PX)을 구입, 이를 페트(PET)병으로 가공해 다시 대기업에 납품하는 T공업은 원료값 인상―납품가 동결이라는 「샌드위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하자 국내 대기업들은 서둘러 PX값을 톤당 9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2배가까이 인상했다. 그러나 가공품을 납품받는 대기업들은 오히려 『가격파괴시대다. 우리도 제품값을 내려야 할 처지다』며 납품가 인상에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원료값은 「토끼뜀」을 하는데 납품가는 「거북 걸음」을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부품을 납품하는 인천의 한 중소기업도 지난달 중순 재벌그룹 계열사로부터 그룹차원에서 추진중인 「5%절감」운동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드러내놓고 납품가 5% 인하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납품업체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협조요청이 강압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연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경영합리화와 가격파괴에 들러리를 서느라 피멍이 들고있다. 원자재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고사직전에 처한 중소기업들이 가격파괴에 영양분을 모두 빼앗겨 비틀거리는 동안 온갖 생색은 대기업이 내고 있는 셈이다.

최근들어 대기업마다 납품업체에 대한 현금결제 확대, 긴급 자금지원, 저리융자등 중소기업 수혈방안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으나 「체감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못한 상태. 지난해 7억여원어치의 포장용 기계를 납품한 C기계는 계약금과 중도금 4억원만 받고 1년이 넘도록 잔금 3억여원을 받지못해 재하청업체로부터 심한 독촉을 받고있다. 그러나 C기계는 행여 거래선을 잃게 될까봐 『내돈 내놓으라』는 말도 못꺼낸채 대기업의 눈치만 보고 있다.

건축자재를 납품하는 G건재도 원청업체가 지난 8월부터 1,000만원이하 물품대금을 현금결제키로 했다고 발표한 이후 한시름 놓았으나 정작 푼돈(400만∼500만원)거래가 쌓여 총액이 1,000만원을 넘고나서야 어음 한장을 받았을 뿐이다. 대기업의 「두얼굴」을 목격하고도 『왜냐』고 물을 수 없는게 G사의 현실이었다.

대기업을 믿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경우도 있다. 분말 천연 조미료 제조업체인 G식품은 대기업으로부터 월 수억원대의 매출을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설비를 대폭 확장한 다음 주문자상표부착(OEM)생산계약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쯤뒤 판매부진을 이유로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 늘린 설비를 다시 줄일 수도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

밖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자 관계가 무르익었다고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은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허덕이고 있다. 「고통분담」을 외면하는 대기업, 스프링처럼 늘어나는 결제기간, 가격파괴 부담의 일방적인 전가등은 중소기업을 계속 울리고 있다. 그러나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남은 거래선마저 뺏기게 될까봐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남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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