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법의 무게는 몸을 움츠려도 줄지않음을 깨달아야우리 국민은 지금 살아 있는 전직대통령 세 명을 등에 짊어지고 있다. 그중의 한 분인 전두환씨는 5공화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감옥 속에서 단식중이며, 또 한 분인 최규하씨는 『전직대통령은 항룡의 위치이므로 입을 열지 않는다』면서 진실에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마지막 한 분인 노태우씨는 대통령 재직시의 비리혐의로 12월 18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나는 5공화국을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12·12 군사반란이 5공화국의 싹이었다면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는 그 개화였고, 전두환씨의 대통령 취임은 탐스럽게 영근 과실이었다. 설사 5공주역들의 일관된 주장대로 12·12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었고, 5·17 계엄확대는 나라의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흘림은 5공화국의 태생적 원죄를 비극적으로 드러내었다.
전두환씨는 지금 5공화국의 정통성을 단식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굳이 정통성을 찾자면 6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전두환씨는 스스로 연출한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지만 노태우씨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노태우씨는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었다. 그 대통령이 법정에서 흰 수의를 입고 검사의 직접심리에 답변했다. 그의 목소리는 방청석 중간에 앉은 나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흰 수의가 법정 속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87년 겨울은 나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해 12월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자, 보수적 반공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있는 자,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혐오보다 변혁의 논리가 불러 일으키는 심정적 불안에 짓눌린 자들에게 그것은 승리요, 환희요, 안도였으나, 닫힌 솥의 형상으로 밀폐되어 인간의 삶이 썩고 욕망이 썩어가는 사회에 대한 진보에의 갈망을 티끌만큼이라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패배였다.
인용이 다소 길어졌지만 위의 글은 92년 가을에 발표한 졸작 중편소설 「완전한 영혼」의 한 부분이다. 5공화국의 적자 노태우씨가 당선된 87년 12월 대통령선거는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패배였다. 개인 노태우씨가 당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5공화국 탄생의 주역이자 그 후계자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견해를 수긍하지 않을 이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나의 믿음에 기대면 국민은 대통령을 잘못 선택했다. 물론 이 선택으로 끌고간 수많은 함정이 있다. 집권당의 금권선거, 매스컴을 통한 이미지 조작, 그리고 야당의 분열등등. 하지만 이 함정을 능히 뛰어넘을 수 있는 뚜렷한 표징이 있었다. 그것은 쿠데타적 방법과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그리고 무엇보다 광주의 낭자한 유혈 속에서 5공화국이 탄생되었다는 사실이다. 눈이 있는 자라면 이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은 노태우씨를 선택했다. 이 잘못된 선택은 결국 노태우씨를 법정에 서게 하는 불행을 초래했다.
노태우씨의 비자금비리가 터지자 대다수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 분노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하지가 못하다. 죄는 결코 홀로 짓지 못한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죄는 잉태된다. 이 관계의 그물 속에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노태우씨의 죄 속에 우리의 죄가 스며들어 있다. 다른 사람의 죄만 깨닫고 나의 죄,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나는 우리 사회가 병든 사회라고 생각한다. 「너의 죄」는 넘쳐 흐르고 있는데 「나의 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순결한데 너희들은 순결하지 못하다는 우렁찬 소리가 지금 천지를 진동한다.
죄의 무게를 다는 것은 진실의 무게를 다는 것과 같다. 이제 노태우씨는 죄의 무게를 측정하는 법정의 저울 위에 올라와 있다. 처음 그 저울 위에 올라온 그는 자신의 무게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적이 안타까웠다.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진실의 눈금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마음 깊이 깨닫기를 빌면서 나는 법정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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