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초 김승옥이 문단에 출현했을 때 한 선배작가는 『너 하나의 탄생을 위해 전후문학은 10여년을 기다려야 했다』는 탄성을 발한 바 있다. 과찬일 수도 있는 그 선배작가의 말이 하등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 문학풍토에서 김승옥의 등장은 신선했고 충격적이었다. 「생명연습」에서 「무진기행」을 거쳐 「서울 1964년 겨울」과 「야행」으로 이어지는 그의 일련의 단편소설들은 전후문학의 음울한 분위기와 허무의식을 일시에 떨쳐버리고 내용과 형식 양면에 걸쳐 우리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독일문학사를 「괴테이전」과 「괴테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전후 한국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이후」로 나눠도 될 만큼 그의 출현은 향후 문학에 중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온 일종의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물론 그는 그후 기대에 걸맞는 문학적 성과를 내놓지는 못했고 오랜 기간 절필을 계속해옴으로써 풍문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은폐시켜 왔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승옥 소설전집」이 5권으로 묶여져 나온 것은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족하다.
그동안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주요 중·단편들은 여러 출판사에 의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중복출판돼왔지만 미완성작까지 포함해서 그의 전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한계를 비롯해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보다 균형잡힌 분석과 서술은 이 전집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전집을 통독하면서 느낀 점은 역시 그의 특장이 가장 잘 발휘된 부분은 단편이며 장편의 경우 발표 지면의 성격도 고려해야겠지만 대부분 통속성의 함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의 장편들은 이 장르가 요구하는 총체성에 도달하지 못한채 피카레스크식 세태소설에 머물러 있으며 때로는 지나친 선정성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일관된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서울과 시골의 대립, 순진성의 상실 및 타락한 세계로의 입문이란 구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시골 출신의 주인공이 급변하는 근대사회의 자장 속으로 편입되면서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심정적 동요를 그리는 데 특히 탁월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내지 동요의 한가운데에 당대의 성풍속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소설이 가진 대중적 흡인력은 그가 바로 이러한 성문제를 정면에서 그리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감각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듯하다.
김승옥의 소설이 이 땅에 선을 보인지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생생한 리얼리티와 다양한 환기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고 여전히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는 김승옥의 작품은 한 뛰어난 작가의 중도하차를 새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반추하게 만든다.<남진우 문학평론가>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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