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진술 “기회 많다” 절차생략/검찰,신분배려한듯 경어체 사용 신문/한보 정 회장 직업물음에 “회사원” 답변노태우 전대통령과 관련 피고인 14명에 대한 첫 재판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첫 사법단죄」라는 역사적 무게로 인해 시종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재판은 상오 10시2분 시작돼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과 검찰의 공소요지 낭독, 직접 신문순으로 8시간20여분동안 계속됐으나 점심식사등을 위해 2차례 휴정을 했다.
○…공판은 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가 김용섭, 황상현 두 배석판사와 함께 입정한뒤 15명의 피고인을 차례로 입정시키면서 시작됐다. 법정안은 단상에 재판부가 자리하고 왼편 검찰석에는 이 사건의 문영호 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이, 오른쪽 변호인석에는 피고인측 변호인 27명이 앉는등 빈 좌석없이 꽉찼다. 김부장판사가 『95고합 1228호… 피고인 노태우』라고 호명하자 법정옆의 피고인대기실에 있던 노씨가 두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천천히 법정안으로 들어왔다. 노씨가 나타나자 법정안은 잠시 술렁였고 노씨를 자세히 보기 위해 방청객들이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노씨는 피고인석 앞에 서서 인사를 하듯 방청석을 향해 약간 고개를 숙였고 재판부를 향해서도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노씨는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가 『다른 피고인들이 모두 들어오고 인정신문을 마칠 때까지 서 있으라』는 재판장의 주의를 받고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호명순대로 자리를 잡기 시작해 맨앞줄 왼쪽부터 노피고인과 삼성그룹회장 이건희 피고인, 대우그룹회장 김우중 피고인이 자리했으며 두번째줄에는 동아그룹회장 최원석, 진로그룹회장 장진호, 대림그룹회장 이준용 피고인이, 마지막줄에는 동부그룹회장 김준기, 전청와대경호실장 이현우, 민자당의원 금진호, 전청와대경제수석 김종인, 전의원 이원조, 한보그룹총회장 정태수 피고인 등 9명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았다.
재판부는 이어 보도진에게 40초간 사진촬영을 허용했으나 초상권보호를 이유로 뒤쪽에서만 찍도록 했다.
○…상오 10시8분께 시작된 인정신문에서 피고인들은 일반 형사범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판장이 본적, 주소, 직업을 묻는 인정신문에 7분동안 서서 답변했다. 재벌총수들은 대부분 직업을 「그룹회장」이라고 답변했으나 정태수 총회장은 「회사원」이라고 말했다.
김영일 부장판사는 검찰이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낭독한 이후 피고인들의 모두진술 절차는 다른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생략토록했다.
김부장판사는 이번 재판이 재판기록도 1만쪽에 달하는 매머드재판임을 의식, 『뇌물죄는 뇌물성 판단을 위한 증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뇌물이다」또는 「뇌물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며 『시간소모적인 답변과 질문을 삼가달라』라고 주문, 신속한 재판의지를 보였다.
○…재판의 핵심 포인트인 노씨에 대한 검찰 직접신문은 10시35분부터 95분간 진행됐다. 노씨를 직접신문한 문부장검사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배려한듯 질문끝에 「했습니까」라는 경어체를 시종일관 사용했다.
노씨는 신문내용을 대체로 시인했으나 장진호 진로그룹회장으로부터 1백억원을 받은 사실은 『직접 돈을 받은 기억이 안난다』고 부인했다.
노씨는 또 조기현 청우종건회장으로부터의 뇌물수수 사실에 대해서도 『조회장이 건넨 80억원은 시주금』이라며 부인했다.
○…점심을 한뒤 하오 2시 속개된 재벌총수에 대한 직접신문에서 대부분의 재벌총수들은 뇌물을 건네준 이유를 특혜나 이권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관례상 성금」명목으로 준 것이라고 한결같이 답변, 자신들의 혐의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삼성 이건희회장은 소감을 묻는 김진태 검사의 질문에 『다른 그룹과 비교할 때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의심스럽다.김검사가 원망스럽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회장은 또 하오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옆자리의 노씨와 20초간 속삭이듯 대화를 나눠 주목을 끌었다. 대우 김우중 회장은 『5공시절부터 30억∼50억원을 청와대에 갖다주었으며 대통령이 무성의하다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액수를 조정했다』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신문을 받은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은 총회장과 회장의 차이점을 묻은 김검사의 첫 질문에 『똑같죠』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정씨는 수서문제로 노씨에게 1백억원을 뇌물로 준 사실을 부인했다가 김검사가 『검찰에서 분명히 「수서문제로 1백억원을 베팅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자 『베팅한 것은 사실이다. 몸도 아프고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이영섭·박정철 기자>이영섭·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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