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첫 공판이 어제 드디어 시작됐다. 우리 역사와 헌정사에서 처음을 기록하는 또 한번의 국치의 날이었다.한복 바지 저고리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공판정에 선 제13대 대통령의 모습을 방청석이나 보도를 통해 지켜 본 국민들의 심경은 처연 처절하기만 했다. 역사를 지우개로 지울 수만 있다면 그냥 지우고만 싶었던 1995년 12월18일이었다.
하지만 이럴때일 수록 모두가 더욱 냉철해야 한다. 이런 국치와 가슴아픔이라는 심연에서부터 나라살림이나 우리 일상의 모든걸 깨끗하고 온전하게 다시 일으켜 세워나갈 것을 다짐하는 각오와 출발의 날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노씨 첫 공판은 우리에게 사실 너무나 의미심장한 것이다. 가장 먼저 광복후 잦았던 힘에 의한 국권찬탈과 정치권 비리를 영원히 청산할 것을 서약하는 뜻이 있다. 한때 나라를 대표한 전직 대통령과 그 핵심참모들의 비행과 함께 비자금 문서파기도 불사한 비도덕성이 공판 첫날부터 노출되고 있지 않은가.
노씨와 함께 줄줄이 공판정에 선 우리나라 대표재벌들의 또다른 모습은 이날이 정경유착끊기를 맹세하는 날임을 또한 웅변해 준다. 헐벗은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잘살게 앞장서 경제를 개척해낸 선구자이면서도 나라를 타락시킨 공범으로 지탄받기에 이른 재벌들의 곤혹스런 두 얼굴은 어찌보면 빨리 달려온 우리사회의 거울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전직대통령도 공판정에 섰고 보니 법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새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어느새 유전무죄·무전유죄가 당연시되어 온 황량했던 우리의 준법질서가 이번 역사적 심판의 당연한 부산물로 제대로 정착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러자면 이번 재판에서야말로 철두철미하게 정직한 사법적 판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더도 덜도 없이 혐의를 끝까지 캐내고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떠나 오직 법으로 정확히 재단하는 자세야말로 필수적이다.
그러고보면 오늘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을 거듭해온 검찰등 우리 사정·수사기관의 독립성·중립성유지와 재탄생을 촉구하고 선언하는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전직대통령을 수사·소추한 검찰이 앞으로 누구인들 성역으로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오늘의 의미는 「앙시앵 레짐」의 진정한 청산과 함께 나라전체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데로 모아져야 겠다.
이제 역사적 단죄의 자리에 선 노피고인도 이런 의미를 깨달아 국민과 법앞에 더욱 겸허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역사앞에서 있었던 그대로를 성실히 밝히고, 스스로의 몸을 던져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자세라도 보일 때인 것이다. 95년 12월18일은 가슴아프면서도 의미심장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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