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간 연산」/작품성·재미 갖춘 수작/평론가 5인이 뽑은 올해의 우수작/탄탄한 출연진·웅장한 무대·실험적 연출 돋보여「역사의 가슴…」 「이디푸스…」 「로미오…」등도 호평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 올해 최우수작으로 평가됐다. 이 작품은 구히서 김윤철 김방옥 오세곤 이혜경등 평론가 5명중 4명의 추천을 받았다. 3명의 추천을 얻은 작품은 연우무대가 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 시리즈로 마련한 「역사의 가슴을 여는 이야기들」과 무천의 「이디푸스와의 여행」.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 민예의 「그 여자의 소설」, 학전의 「개똥이」등은 2명이 거론했다.
표가 연일 매진됐던 「문제적 인간 연산」은 불황에 빠진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제작(유인촌), 스태프, 캐스팅의 조화가 수작을 일궈냈고 연출가 이윤택의 실험성이 돋보였다. 유인촌 이혜영 김학철 정규수 정동숙 윤복희등 역량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출연진과 웅장한 무대(신선희)는 연극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계약시스템을 도입한 제작방식, 사교장으로서 공연장의 역할등도 관심을 끌었다.
「역사의 가슴을 여는 이야기들」은 막이 내린뒤 더욱 좋은 평을 받았다. 「의자연석회의」 「멍추같은 영감」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등 잊혀진 3개의 단막극을 발굴, 2시간 넘게 한자리에서 공연함으로써 단막극의 가치를 환기시킨 계기가 됐다.
「이디푸스와의 여행」은 서울연극제 대상수상으로 작품성이 입증됐다. 고대 그리스비극과 한국의 전통미학을 접목시킨 김아라의 역량은 일본 덴마크등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음악(임동창)이 극을 주도적으로 이끈 점이 이채로웠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한국적 연극양식을 추구해온 오태석이 서양의 고전에 도전한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원작의 무게로 인한 과도한 엄숙함은 모두 걷어냈다. 대신 당돌하다 싶을 정도의 활기찬 연기, 비교적 자연스럽게 들리는 대사가 무대를 채웠다.
씨받이의 삶을 소재로 한 「그 여자의 소설」이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은 고전적 이야기구조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됐다. 언어를 경시하고 구조를 해체시키는 포스트모던적 실험에 재미를 못 느낀, 또는 소외된 관객들이 잔잔한 관조에 끌린 것. 공호석 이용이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김민기 작· 작곡· 연출의 「개똥이」는 기대만큼 아쉬움도 컸던 공연. 11년만에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대형무대 연출의 아마추어적 한계를 노출했지만 우리 말을 중시하는 뮤지컬의 새 가능성이 평가됐다.
이밖에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이야기구조와 퍼포먼스의 조화, 분단문제를 다룬 「노래」는 직선적 메시지전달을 뛰어 넘는 서정성, 「영월행 일기」는 극작과 연출의 원숙함에서 각각 좋은 평을 받았다.<김희원 기자>김희원>
◎올해의 경향/주제보다 형식에 큰 관심/극중극·혼성모방·패러디기법 많아져/벗는 연극·사랑티켓 불정파문은 오점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주제)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형식)에 대한 관심이 컸다. 소재의 폭도 넓어졌고 제작과정에 있어서 새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형식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것은 기존작품의 패러디 내지 혼성모방이 두드러졌음을 의미한다. 서울연극제는 아예 극중극 페스티벌로 보였다. 이 형식실험의 목적은 대체로 정치적 풍자. 이런 형식이 아니더라도 80년대적인 사회·정치 문제의식에 대한 반추가 지난해에 이어 강세를 보였다. 5·18광주문제나 쿠데타, 독재정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금기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반영했다. 치열한 비판정신이 결여된 이 형식실험은 그러나 웃고 즐기기 위한 베끼기에 머물러 아쉬움을 주었다.
주제면에선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페미니즘연극과 사회와 인간을 성으로 풀어보려는 접근이 두드러졌다. 뮤지컬은 중·소형 작품이 제작되는등 다양한 형태로 정착하고 있다.
한편 국제극예술협회(ITI) 회장배출(김정옥)에 이어 97년 ITI서울총회 및 세계연극제 개최를 착실히 준비, 연극붐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대형사고와 정치적 격변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바람에 사람들의 관심은 무대보다 현실에 몰렸다. 벗는 연극 파동, 사랑티켓 부정사건은 오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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