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또 14년형 받은 중 반체제 위경생(뉴스 메이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또 14년형 받은 중 반체제 위경생(뉴스 메이커)

입력
1995.12.14 00:00
0 0

◎중 당국의 설득노력 불구 인권운동 신념 고수/홍위병때 첫 투옥후 생애 3분의1 감금생활중국의 대표적 반체제인사 웨이징성(위경생)이 13일 베이징(북경)시 제 1 중급 인민법원에서 14년형을 선고받았다. 16년전인 79년 같은 법정에서 반혁명죄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위는 이번에는 국가전복기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날 재판이 열린 법정은 70∼80 밖에서 부터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삼엄한 경비가 취해졌으며 외국 보도진들에게는 『좌석이 없다』며 방청권을 주지않아 사실상 비공개리에 재판을 진행했다.

문화대혁명당시 홍위병으로 첫 투옥생활을 경험한 위는 지금까지 생애의 3분의 1이상을 투옥 또는 감금생활로 지냈다. 특히 29세이후 지금까지 16년동안 자유의 몸이었던 기간은 불과 8개월이 채 되지 못한다.

중국당국이 만기출소를 6개월여 남겨둔 93년 9월 위를 전격 석방한 것은 2000년 하계올림픽을 베이징에 유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인 위의 석방을 통해 인권을 구실로 한 서방의 「베이징 개최불가」공세를 둔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올림픽 유치는 비록 실패했으나 중국당국은 이 신념에 찬 반체제제인사를 「교화」하려 많은 애를 썼다. 개혁개방의 쇼윈도인 광둥성을 둘러보게 한 것에서도 이러한 중국당국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를 향한 위의 신념은 14년 6개월간의 투옥생활에도 무디어지지 않았고 중국의 경제적 번영모습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전혀 「회개」할 줄 모르는 위를 불안스럽게 지켜보던 중국당국은 위가 지난해 4월1일 방중한 미국무부 인권담당차관보를 만나 중국 인권상황의 실태를 폭로하자 마침내 그를 다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위는 78년 「민주의 벽」운동당시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등소평)을 공격하면서 국제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위는 등의 4대현대화 노선(농업 산업 과학기술 국방)에 대해 「정치민주화라는 제5의 현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4대현대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당시로서는 대담무쌍한 주장을 폈던 것이다. 위는 결국 79년 3월 반혁명죄로 체포됐고 『헌법의 제규정을 위반하고 반동적인 글을 통해 사회주의체제 전복을 선동했으며 외국에 중국의 군사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15년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위는 안후이(안휘)성 출신으로 문화혁명초기 베이징시 홍위병 지도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는 중앙문혁소조의 「출신주의 비판론」에 휘말려 체포됐다가 67년말 석방됐으며 마오쩌둥(모택동)사후 탐색지를 창간, 편집장으로 활약하면서 「민주의 벽」운동을 주도했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