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흑연로 개발비 상계」 등 철회로 급진전/송·배전시설상환조건 지난 주말 최종합의지루한 신경전의 두 달이었다. 국제무대에서 전례가 없는, 그리고 상호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독특한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을 위해 뉴욕에서 마주앉은 것은 9월말. 전문가회담으로 시작된 줄다리기는 상대수 읽기의 「카드게임」으로 시종했다. 탐색전으로 막을 올린 회담이 본격 논의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은 10월16일부터 열린 고위회담부터. 그러나 청신호는 의외로 빨리 왔다.
고위회담에 들어간지 2주만인 10월말 북한측은 흑연 원자로 개발비용 상계와 핵연료 공급등 기존의 주장중 주요부분을 철회하고 나섰다. 공급범위와 상환조건은 양대쟁점이었다. 이중 공급범위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상환조건에 대해 당시 KEDO측은 상당기간의 무이자를 전제로 유예기간을 준다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문제가 풀린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마지막 미결부분으로 남아 있던 송·배전시설 문제와 함께 3년거치 17년 분할상환 조건에 최종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송·배전시설문제 타결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단초로 여겨진다. 합의내용은 「북한측이 송·배전시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되 KEDO측은 이를 도와준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북한측은 송·배전시설이 KEDO측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추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 셈이다. 협정문구를 이같이 「기술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타결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중요부분은 발전소 부품의 표준규격문제였다. 예컨대 원자재 부품의 규격기준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 한국기준 가운데 어느것으로 할 것인가였다. 한국으로서는 양대쟁점 못지않게 중요시한 부분이다. 규격기준이 달라질 경우 한국형 원자로라는 기본원칙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양측은 「한국기준」이라는 구체적 표현만 피했을 뿐 내용에서는 한국기준으로 합의하는 기술을 구사했다. 제네바 합의에 「한국형」이라는 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번 회담이 오래 끈 것은 굵직한 쟁점보다는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협의」 때문이었다. 한 관계자는 『기술부문 전문가회담은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 가운데 이루어졌다』면서 『북한측은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설명했고, KEDO측은 그들이 모르는 국제관례를 친절히 알려주었다』고 전했다. 이번회담은 기술자들끼리 상호신뢰를 쌓은 중요한 계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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