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을 위한 전력증강계획이 이른바 율곡사업이다.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2000년대 통일조국의 안보환경까지 내다보면서 전쟁을 억지하고 동해로는 일본을, 서해로는 중국, 북으로는 북만주를 넘어보는 작전요구수준을 충족시킬수 있는 전투기는 어떤 것인가?이것이 공군이 내세운 차세대전투기의 선정검토기준 이었다. 대상기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이었다.
공군본부에 참모총장 직속 특별기구로 기종선정위원회가 결성되고 방대한 작업과 검증을 거쳐 공군이 선정한 기종은 미해군에 실전배치된 맥도널 더글러스(MD)사의 FA―18(호넷)이었다.
정용후 전공군참모총장이 89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기종결정 재가를 받아냈을때 전공군은 새로운 공군시대가 열리기라도 한듯 축제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전총장은 대통령재가를 받은 후 9개월만에 강제 퇴역됐다. 정전총장은 이임식은 물론 전역식 행사도 갖지 못하고 옷을 벗어야 했다.
원래 차세대전투기 사업규모는 공군에 할당된 전력증강비 50억달러 수준에 맞추어 F―15나 F―18급으로 120대분을 5개년에 걸쳐 도입한다는 계획사업으로 추진됐다.
나는 공군력 증강계획과 기종선정단계에서부터 국방부 군비통제실장 합참의 전략기획부장등의 직책에서 직·간접으로 의견개진을 하며 전체흐름을 보아왔다. F―16을 인도받아 조종사를 양성한 비행단장도 거쳤다. F―16은 이미 한국공군이 87년에 도입 40여대의 F―16전투기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우선 개념적으로 차세대가 아니다. 합참의 전략기획부장으로서 나는 FA―18에 비해 F―16은 2000년대의 작전요구에 제약이 있음을 지적도 했다.
MD사와의 협상과정에서 기술이전의 요구수준과 기당 가격의 함수관계는 당연한 것이고 정식계약연도가 늦어지면 물가상승분을 적용하기 때문에 결국 50억달러의 한정된 공군증강예산으로 120대분의 FA―18을 구입하기에는 추가예산이 따라야 했다. 부족분은 정부차원에서 재원을 지원하거나 국방부자체가 국방비의 자원배분의 신사고를 가지고 공군전력증강을 적극 지원해야 했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다.
설득에 한계가 있자 공군참모총장은 어쩔수 없이 120대 계획분을 90∼100대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대통령결재시 보고된 120대수준과는 상이한 상황으로 F―16기 120대를 보장해주겠다는 F―16 로비팀에는 좋은 공격카드가 됐다.
정총장은 그런중에도 예산이 모자라면 대수를 줄여서라도 FA―18로 가야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 그것이 정총장이 군복을 벗게된 원인이다.
가격을 이유로한 대통령의 기종 재검토 지시는 정책논리로는 온당치 않다. 50억달러, 4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전력증강비는 5년간의 공군전력증강비의 대부분이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군은 자체사업비의 한계로는 균형발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차세대전투기사업은 공군사업이라기 보다는 국가적 사업이다. 왜냐하면 통일국가로서 2000년대 한반도 안보를 보장하는 사업에서도 그러하거니와 내면적으로 보면 항공기도입이 아니고 전투기 기술도입생산이기 때문이다. 기술이전의 심도에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통상 직구매보다 기술이전생산의 경우 대당 가격이 2∼2.5배 비싸다.
한반도 안보를 보장하는 2000년대의 공군력확보와 획득한 기술로 항공산업을 육성코자 하는 국가적 웅지가 담겨있는 사업이었으므로 가격문제는 달리 해소방안을 찾도록 했어야 했던 것이다. 전력증강비의 60%를 육군, 나머지를 해·공군및 기타에 배분하고 있는 배분비의 적정화도 한 방안이 될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의 안보에 위기가 오면 기꺼이 애기와 함께 산화할 전투기조종사들의 우국충정이 비전문가및 권력층과 로비에 의해 왜곡 변질된 사실을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을 가눌 수 없었다. 그 분노는 요즘 율곡사업과 관련해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누가 얼마의 커미션을 받았느냐는 것과는 시각을 달리한다.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귀국했으므로 기종변경의 배경이 백일하에 드러나 정책담당자들에게 뼈저린 교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약력
▲공사9기졸 ▲공군정보참모부장 ▲합참군비통제실장 ▲합참전략기획부장 ▲남북고위급예비회담 군사대표 ▲공군소장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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