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의 부음란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아무개, 모일 모시 어디서, 발인, 연락처가 담겨 있는 것은 같지만 여기에 몇 마디가 덧붙게 마련이다. 흔히 「자상한 어머니」「사랑스런 아내」와 같이 고인을 추모하는 평범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죽음을 뛰어넘는 신선한 글귀도 늘고 있다.이같은 추세는 부음란을 무료로 제공해왔던 미국의 지역 신문들이 지가 상승과 경영악화를 이유로 유족들에게 「광고료」를 요구하면서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공짜일때야 판에 박힌 문구라도 감지덕지 했지만 기왕 돈을 낼 바에야 좀 더 색다르게 꾸며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 타임스와 같은 유력지는 오래전부터 돈을 받고 부음을 실어 왔다. 하지만 한줄에 20달러가 넘어 10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며 사진을 싣는 경우는 아예 없다. 이에 비해 광고료가 싼 지역 신문에는 사진과 함께 유명 인사의 추모 기사에 손색없는 일반인들의 부음 기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구태의연한 글귀대신 「그는 좀 멍청했지만 남을 속인 적은 없다」는 등 고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내용이 많아지고 있다.
부음 기사 신청인도 고인의 유족이나 친지로 한정된 게 아니다. 임종에 앞서 진지하게 생을 되돌아 보며 스스로 부음 기사를 작성, 신문사에 맡겨 놓는 노인들과 불치병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글에는 「28세의 나이로 나는 죽었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식의 장난기도 섞여 있다.
부음 기사는 가족등 극히 제한적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유서와는 달리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힌다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솔직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스스로 부음 기사를 써야 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밝아지지 않을까.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든 범부든 부음 기사에는 자신의 잘못을 구차하게 변명할 지면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뉴욕=이종수 특파원>뉴욕=이종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