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쪽 주민이 난민들 잇단 보호/지도자 갈등넘어 평화정착 청신호지난 7월 보스니아의 크라이나 지역에 대한 크로아티아군의 대규모 공세로 이곳에 거주하던 수십만명의 세르비아계는 정든 고향을 등지고 보스니아의 반야 루카 지역으로 피난했다. 크로아티아군은 이들이 버리고 간 집과 가재도구를 자기민족에게 분배했다.
크로아티아인 미르카 루켄다란 여성은 자신에게 분배된 집을 둘러보던 중 냄새나는 지하실에서 기진맥진해 있는 86세의 마르타 르주비시치란 세르비아계 노파와 마주쳤다. 루켄다는 남편이 세르비아계에게 학살당한 미망인이었다.
세르비아계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이 사무친 그였지만 이 노파를 차마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루켄다에겐 이 노파가 적이 아닌 보살펴야할 한 인간으로 비쳤던 것이다. 5개월이 지난 지금 루켄다와 르주비시치는 한가족처럼 다정하게 살고 있다.
유엔은 7월 크로아티아군의 대공세 당시 크라이나 지역에서 버림받은 세르비아계 노인들의 수가 5,000명에 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중 적지 않은 수가 앞서의 예처럼 「적과의 동거」를 평화롭게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보스니아 내전세력간의 화해는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였다. 민족 ·종교의 이질성 뿐 아니라 지난 3년간의 내전중 상대방에 대해 자행된 엄청난 만행이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연속에 가려져 있던 이같은 미담이 오는 14일 평화협정 체결을 앞두고 속속 밝혀지면서 이민족간의 공존을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유엔은 루켄다와 같은 훈훈한 사례를 들어가며 이민족간 공존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사실 구유고 지역에는 수백년전부터 회교도와 그리스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가톨릭교도인 크로아티계가 어깨를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91년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웃은 하룻밤 사이에 적이 돼버렸다.
자신의 의사라기 보다는 민족주의를 외치는 지도자들과 열혈 추종자, 민병대에 의해 반목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말없는 다수」가 소수의 정치인들에게 희생된 셈이다.
발칸반도에 강경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한 데는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둘러싼 서유럽등 주변 강국들이 개별민족을 희생시키며 패권다툼을 벌인 탓도 크다. 이제 주변국들은 민족갈등을 치유할 지원에 나서야 할 차례다. 자신들이 뿌린 「원죄」의 씨앗을 거두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과거청산」의 길이기 때문이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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