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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김씨 빼돌리기 소동/김종휘씨 귀국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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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김씨 빼돌리기 소동/김종휘씨 귀국 안팎

입력
199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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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옆에 수사관들 대기… 보도진 허탕/검찰청 도착 “자진귀국… 모두 밝히겠다”/안중수부장 고교후배가 중개역 알려져○2년8개월만에 귀국

○…도피성 출국 2년8개월만인 11일 귀국한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김포공항출구를 에워싼 보도진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활주로에서 곧바로 검찰로 연행됐다. 검찰은 트랩옆에 수사관 3명을 대기시켰다가 보도진을 피해 김씨를 대검청사로 소환했다.

김씨는 하오 6시께 검찰청사에 도착, 보도진의 질문공세에 『자진해서 왔다』『검찰에서 모든 것을 다 밝히겠다』는 단 두마디만을 하고 조사실로 올라가 철야조사를 받았다. 그는 『차세대전투기 기종변경과정에서 리베이트자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트랩 옆에 승용차를 대기시켰다가 김씨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귀빈실 통로옆 서쪽끝 항공기 계류장 출입문을 통해 곧장 빠져나갔다. 검찰은 연행하는 과정에서 김씨의 세관검열이나 출입국심사등 공항의 입국사열을 거치지 않는등 가장 기본적인 법적 절차도 무시했다.

공항에서 김씨의 귀국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있던 보도진 1백여명은 하오 4시47분께 김씨를 태운 LA발 KE017편이 활주로에 도착한 뒤 일반 승객들이 모두 내린 뒤에야 김씨의 비밀연행 사실을 알고 공항측에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소동을 빚었다.

○…미국에 체류중인 김전수석과 검찰측간의 귀국을 둘러싼 줄다리기 과정에는 김전수석과 안중수부장의 경기고 후배인 천기흥 변호사가 중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변호사는 경기고 3년 선배이자 사시8회 동기생인 안중수부장에게 김전수석의 귀국의향을 전하고 안중수부장의 귀국종용의사를 김전수석에게 간접 전달하는 방법으로 양측을 중개했다.

○자수서 검찰에 전달

천변호사는 이날 김전수석이 재판과정에서 형량의 2분의 1까지 감경받을 수 있도록 자수서를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이날 김전수석의 귀국 배경에 대해 『검찰측과 김씨 사이에 궁합이 맞은 것』이라고 표현, 그동안 물밑 접촉과정에서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음을 밝혔다.

안중수부장은 『김전수석이 귀국할 의사가 있었으며 검찰도 차세대전투기 기종변경과정의 의혹등을 규명하기 위해서 김전수석의 조사가 필요해 들어오라고 했다』며 『서로의 이해가 맞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안중수부장은 지난 5일 노태우씨 기소때부터 김전수석의 귀국가능성에 대해 『그런 정보가 있다』 『들어올 것으로 안다』 『곧 들어올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 김씨 귀국을 둘러싼 협상에 진전이 있었음을 내비쳐 왔다.

안중수부장은 지난 8일에는 취재기자들에게 『김전수석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말하는 등 김씨 보도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이진동·염영남 기자>

◎김종휘씨는 누구/노씨재임내내 외교안보주도… 93년 미도피

1935년 평양의 부호가문에서 태어난 김종휘씨는 경기중·고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 베이츠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주유엔대표부 직원으로 특채됐다가 65년 귀국해 국방대학원 교수, 안보문제연구소장, 한국정치학회장등으로 주로 학계에서 일했다.

노태우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노씨가 수경사·보안사령관으로 있을 때인 80년. 김씨는 국방대학원 교수이자 안보문제연구소장으로서 당시 5·17 쿠데타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신군부 핵심세력들과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었다.

김씨는 이때의 인연으로 88년 노씨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곧바로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으로 발탁돼 5년간 운명을 함께 했다. 특히 6공 초기 북방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 노씨의 신임을 얻은 그는 91년 외교안보수석으로 승진한 뒤 외교 뿐만 아니라 율곡사업등 국방 관련정책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차세대 전투기 기종선정과 관련, 김씨는 89년 12월 노씨와 함께 전투기를 미맥도널 더글라스사의 F18에서 F16으로 변경하는데 핵심역할을 했다.

김씨는 의혹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감사원의 율곡사업 감사 착수직전인 93년 4월 버클리대 연수를 핑계로 미국으로 도피, 은둔생활을 계속해왔다.<홍윤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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