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 「YS후계」 설득에 “아내에 물어보라”/생도때 우유부단성격 전씨 자주 핀잔도최근 발매된 일본의 월간지 분게이 순주(문예춘추) 96년 1월호는 「노태우의 그늘에 여자 있어」라는 제목으로 노씨 축재비리의 이면을 파헤쳤다. 구로다 가쓰히로(흑전승홍) 산케이(산경)신문 서울지국장이 기고한 이 글은 비자금조성에 노씨의 부인 김옥숙씨가 깊이 관여했으며 노씨는 안방관리에 실패해 파멸하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통령범죄의 이면의 이면」이란 부제가 붙은 이글중 일부를 소개한다.
<대통령후계자를 둘러싸고 민자당이 크게 흔들릴때인 92년이었다. 야당출신인 김영삼씨를 밀것인가 보수본류인 이종찬씨나 박태준씨를 후보로 내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p>대통령후계자를>
김영삼씨 옹립에 적극적이었던 김윤환씨가 노대통령을 설득하러 갔을 때 노씨는 『나는 관계없지만 안방에서 뭐라 그러는지 들어보라』고 해 김옥숙씨를 찾아갔으나 그녀는 끝까지 설득에 응하지 않았다. 김씨가 김영삼씨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야당체질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까운 친척으로 노대통령의 지혜주머니인 박철언)씨와 김영삼씨가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김영삼 정권에서 오늘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감했을지도 알 수 없다. 여하튼 김씨가 후계자 문제까지 관여할 정도라면 다른 문제에 결정권을 행사했음은 말할 여지도 없다.
노씨는 육사생도시절 집안이 유복했던 동기생 김복동씨의 집에 자주 놀러 갔다가 그의 누이동생 김옥숙씨에게 반해 결혼했다. 7세때 부친을 잃은 노씨는 친척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없고 항상 주위의 분위기를 살피며 처신했다. 예를 들어 생도시절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가면 보스기질이 강한 전두환씨가 『나는 자장면』이라고 할 경우 전씨에 항상 반대하는 김복동씨는 『그러면 나는 우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씨는 우물쭈물하면서 말을 하지 않아 전씨로부터 『빨리 결정해』라는 질책을 듣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군인들의 경우 재산관리는 대부분이 부인들이 하는 것이 일반화해 있다. 80년대 전반에 군출신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정래혁씨가 부정축재자로 몰렸을 때 『재산관리는 아내가 하고 있어 나는 잘 모른다』고 변명했는데 사실인 것같다. 전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도 미장원경영과 부동산투자등으로 재산관리를 도맡았으며 김옥숙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당선됐던 노씨가 집권 2년만에 장녀와 장남을 재벌과 혼인시킨 것도 외국기자들의 눈에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으로 비쳤다. 이같은 무리를 한것도 김옥숙씨의 의사였던 것이 분명하다.<도쿄=이재무 특파원>도쿄=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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