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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비명/방민준 경제1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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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비명/방민준 경제1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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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전직 대통령의 비자금파문과 「12·12」 「5·18」 재수사로 온 세상이 시끌시끌한 사이 중소기업들은 소리도 없이 쓰러지고 있다.

경제계는 사실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순간에 「이러다간 경제가 결단나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소리내 외칠 형편이 못되었다. 사업이권을 위해 거액의 뇌물을 바친 정경유착의 죄도 있어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였다.

다행히 검찰은 경제에 미칠 충격을 감안, 재벌 총수들의 사법처리를 최소화했다. 긴장하고 있던 재계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미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상당한 상처를 입은 후였다.

정부는 비자금파문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는 일련의 사태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비자금파문에 못견디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자료에 의하면 올들어 10월말까지 도산한 중소기업은 1만1,416개에 달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26% 늘어난 것이다. 하루에 38개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비자금파문이 온 세상을 뒤집어 놓으면서 부도중소기업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부도중소기업은 1만4,000개를 넘을 것이란게 중소업계의 전망이다.

정부도 중소기업계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8일 대통령주재로 긴급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확대등 여러 지원책을 마련했다. 역사청산에 바쁜 정부가 뒤늦게나마 비자금파문의 악영향을 인식, 경제살리기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중소기업계에서 일기 시작한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많은 국민이 불안과 혼란을 호소한다.

현 시국을 보면 시계가 제로다. 모르고 가는 길은 언제나 불안하다. 한치 앞이 안보이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 불안의 원인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아니라 이후에 닥칠 사태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이 불안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짧은 시기에 이만큼 농축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예도 없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을 했던 것처럼 역사청산도 압축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청산작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불안을 씻어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앞일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큰길(대도)이 열려 있으면 불안할 까닭이 없다. 목표가 정확하고 길이 보인다면 웬만한 어려움은 얼마든지 참아내며 역사에 동참할 수 있다. 지도자가 넓은 가슴과 먼 앞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그 길을 이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정신차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서 한가지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 노벨평화상을 탈만큼 세계적인 지도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권좌에서 물러나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전직대통령이 있었으면 하고.

청산의 대상자나 청산의 주인공 모두 민심을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온전한 전직대통령을 갖고 싶은 민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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