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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밝힌뒤 포섭대상자 접촉”/부여무장간첩 김동식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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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밝힌뒤 포섭대상자 접촉”/부여무장간첩 김동식 일문일답

입력
199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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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세대 공작원」 선발 10년간 특수훈련/남포항출발 서해통해 제주해안 상륙침투/허인회씨 「트드」 등 물어보며 신분확인해/이선실 북영웅칭호 받으며 여생보내부여무장간첩 김동식은 8일 안기부청사에서 안기부의 수사발표에 이어 1시간20분동안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동식은 시종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로 회견에 응했으며 일부 질문에는 곤혹스러운듯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남파전 북에서의 활동경력은.

『남창인민학교와 남창고등중학교를 마치고 80년 8월 노동당 연락부(현 사회문화부)에 들어가 10년가량 특수공작훈련을 받고 90년 5월 1차 침투한뒤 10월 복귀했으며 지난 9월 2차 침투했다』

―1·2차의 침투와 복귀경로는.

『이번 침투때는 8월29일 어선으로 위장한 모선을 타고 남포를 출발, 서해 공해상을 거쳐 제주공해상에서 잠수정으로 갈아탄뒤 남제주군 온평리 해안까지 와서 헤엄쳐 상륙했다. 이후 여객선으로 목포로 갔다. 지난 90년때도 같은 방법으로 제주 서귀포시 보목동해안으로 들어와 강화도 건평리 해안을 통해 복귀했다』

―강화도로 침투했다는 애초의 진술을 번복한 이유는.

『처음 진술할 당시는 같이 침투한 박광남이 체포되기 전이었고 이미 제주에서 복귀접선 약속이 돼있던 상태라 그들이라도 살리기위해 허위진술을 했다』

―침투목적과 지령받은 임무는.

『남에서 활동중인 고정간첩을 접선하거나 복귀시키는 일과 북에서 지정해준 대상자를 만나 포섭하는 일이었다』

―북의 간첩교육기관에 대해 말해달라.

『북의 대남전략부서는 중앙당 아래 사회문화부, 대외정보조사부, 작전부, 통일전선사령부등 4개부서와 인민무력부의 정찰부등이다. 내가 속한 사회문화부는 남한의 지하당조직, 사회혼란조성, 민중폭동등을 주임무로 하고 공작원을 양성하는 6개과로 나뉘어 있다. 그중 6과는 남한의 현지 인사를 포섭하는데 주력한다』

―남파공작원은 어떻게 선발하나.

『80년대초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일명 새세대공작원이란 남파 공작원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신체건강하며 출신성분이 좋은(가령 부모의 직위가 높거나 조부모가 6·25전상자든가 등등) 젊은 인재를 선발해 남한에 대한 특수교육을 시킨다. 말씨를 배우고 비디오등을 통해 남한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배운다』

―소속된 부서의 인원은 어느 정도며 남에서 활동중인 고정간첩의 식별방법은.

『6과는 30∼40명이며 다른 과나 부서의 내용은 각과가 주로 외부와 차단된 장소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알 수 없고 고첩은 사진을 통해 이미 알고 왔다』

―포섭대상자의 선정기준은 무엇인가.

『남에서 출판되는 잡지나 신문등을 통해 사상성이 뛰어난 인사를 대상으로 삼는다』

―접근방법이 이전과 달리 대담해졌는데 교육내용이 달라졌나.

『신분을 밝히고 접근하는 방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0년에도 이선실이 이런 방법으로 포섭에 성공했다. 포섭대상자의 사상이나 경력을 감안해 북에서 온 공작원이란 신분을 밝혀도 적어도 신고는 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허인회씨를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으며 허씨는 어떤 대응을 했나.

『9월16일과 20일 두차례 만났다. 평양방송 청취가 가능한 주파수를 알려주며 북에서 왔다고 했는데 믿지않는 눈치였다. 허씨는 「트드」(김일성이 만든 타도제국주의 동맹)와 「조광(조국광복회)」에 대해 물어보며 내 신분을 확인한뒤 무선호출기 번호를 가르쳐주며 7942(친구사이)를 누르라고 교신방법을 알려줬다. 허씨는 신분을 밝혔는데도 놀라거나 긴장하는 모습은 없었다』

―어떤 인사들과 접촉을 했는가.

『허씨외에 함운경 이인영 우상호 황광우 정동년 고은씨 등이며 신분을 밝히고 접근했다』

―1차침투시 이선실과 어떤 행동을 했으며 현재 북에서 이의 위치는.

『이씨에게 할머니호칭을 쓰며 지시를 받아 남한의 인사포섭이나 사상교육등의 일을 맡아해왔다. 당시 이씨는 정치인, 재야인사, 대학교수등 광범위한 사회인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는 김부자로부터 훈장과 영웅칭호를 받고 최고급초대소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북의 대남 통일전선방식이 여전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1·2차례 침투하면서 국력은 경제력이란 생각이 점점 들게 됐다. 북과 남의 경제력을 비교 감안하면 적화통일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간 검문을 받거나 북한 말씨로 의심을 받은 적은 없는가.

『말씨나 행동으로 남에게 의심을 받은 적은 전혀 없고 제주―목포 이동중과 여인숙에서의 임검등 몇번 검문을 받았지만 위조주민증을 제시해 매번 무사히 통과했다』

―북에 두고온 가족은.

『부모님과 시집간 여동생 외에 군에 있는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 하나있다. 또 평양에는 아내와 3세된 딸이 있으나 아마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다』

―현재 심정과 전향할 의사가 있는지를 밝혀달라.

『내려올때 죽음을 각오했었고 자결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남에 내려온뒤 동료인 박광남이 죽었고 우리를 잡으려던 경찰관 2명도 희생됐다.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죄없는 사람들이 희생돼야 하는지 또 과연 이런 것이 옳은가를 깊이 생각케 됐다. 또 나는 지금 조사받는 중이다. 생사여부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받은적이 없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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