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년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악습중의 하나는 흑백논리다. 동지아니면 적, 우파아니면 좌파, 용기있는 자 아니면 비겁한 자, 친여아니면 친야라는 양분적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다.문민정부 출범후 이런 사고방식이 후퇴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 구속으로 일대 파란이 일면서 다시 흑백논리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한 조짐은 신문사에 걸려오는 전화에서 감지되었다. 크고 작은 세상사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게 되는 신문의 칼럼은 항상 독자들의 찬반론에 부딪치게 되는데, 이번 사태에 대한 반응중에는 극단적인 주장이 많아 유감스러웠다.
『대선자금을 공개하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선거자금을 밝힌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습니까. 정변이 일어나도 좋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주장을 합니까』
『지금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역사청산을 하고 있는데, 전폭적인 지지로 힘을 몰아줘야 할 언론인들이 지엽적인 비판을 일삼고 있으니, 도대체 목적이 뭡니까. 사정의 칼이 언론쪽으로 올까봐 미리 막자는 것 아닙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법 제정의사를 밝히자 마자 신문·방송들이 광주사태를 처음 발견했다는 듯이 날이면 날마다 떠들고 있는데, 왜 그동안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까. 계엄하에서 시위대를 진압한 군을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빨갱이들 주장과 무엇이 다릅니까』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고 칼럼에 썼는데, 5·6공 세력아닌 그 누가 왜 불안해 한다는 말입니까. 국민에게 불안해 하라고 부채질하는 겁니까』
나에게 전화를 걸어준 분들중에는 순수한 독자도 있고, 정치권에 속해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찬반론이 이런식으로 제기된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100% 지지냐 반대냐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압력, 10%의 비판도 수용하지 않으려는 독선, 당신은 도대체 누구편인지 한마디로 대답하라는 조급함은 지나간 시대의 문화다.
이런 흑백논리, 양분적 문화가 고개를 들면 사람들은 차츰 침묵하게 된다. 적도 동지도 아니고, 우파도 좌파도 아니고, 친여도 친야도 아닌 사람들은 『당신은 도대체 어느편이요?』라는 질문에 지쳐서 비판할 의욕을 잃게 된다. 정치인들에게, 특히 집권세력에 비판없는 세상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5·6공 비리란 바로 비판없는 세상의 산물이 아닌가. 흑백논리, 양분적 사고가 고개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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