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서도 필봉 NYT지 얼굴역지난 6일 타계한 제임스 레스턴은 20세기 세계언론사에 큰 획을 그은 미 언론계의 거목이다.
그는 1909년 영국 스코틀랜드 클라이드뱅크에서 출생, 11세때 미국에 건너온 이민 1세로 23세때인 32년 오하이오주의 스프링필드 데일리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는 이어 34년 AP통신 체육기자, 타임스 런던지국장을 거친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2차대전이 발발하던 날인 39년 9월1일 런던특파원으로 뉴욕 타임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워싱턴지국장(53년)과 부사장(69년)을 거쳐 74년에는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명칼럼을 남겼다.
기자로서 그는 2차대전의 막바지인 44년에 열렸던 덤바튼 오크스회의에서 연합군측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회구성 비밀제의를 특종보도해 첫번째 퓰리처상을 받은데 이어 57년에 56년 미대선에 대한 뛰어난 보도로 2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칼럼니스트로 그는 투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국 국내외문제에 대해 명쾌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전세계 지성인들을 이끈 「지성의 전도사」의 역할을 했다. 성경구절과 생활주변의 일을 적절히 배합해 물흐르듯 쉽고 유려한 그의 필치는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레스턴이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과 함께 「당신은 레스턴칼럼을 읽고 있습니까」라는 광고를 지하철에 내걸정도로 그의 뛰어난 필치와 비판력은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87년 11월 뉴욕 타임스에 그가 기고한 고별 칼럼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대통령의 이란 콘트라스캔들에 대해 「권력이 부패하면 국민도 부패하게 된다」고 갈파하기도 했다.
89년 80세 생일을 맞아 50년간 몸담아 온 뉴욕 타임스에서 은퇴한 뒤에도 그는 회고록 「데드라인」등을 집필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계속했다. 암으로 투병하던 병상에서도 그는 조지 부시대통령의 대이란 정책을 비판하는등 필봉을 놓지않았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3남이 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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