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정권장악 핵심역할/경복궁 멤버로 광주진압군 출동 박준병씨/12·12때 최대통령 거주공관 장악 고명승씨6일 검찰소환조사를 받은 박준병의원과 고명승씨는 12·12당시와 그이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박희도 전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육사 12기인 박의원은 10·26사태가 나자 계엄군으로 서울에 진주했으며 12·12 당시 경복궁모임에 참석했다. 전두환씨가 5월17일 소집한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계엄전국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며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휘하병력을 이끌고 진압군으로 출동했다.
그후 박의원은 국군보안사령관(현 기무사령관)을 끝으로 육군대장으로 예편, 87년 12대 총선에서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뒤 민정당 국책조정위원장 사무총장을 지내는등 당의 요직을 두루 거쳐 일반인들에게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인상이 더욱 깊이 새겨져있다.
박의원은 90년 3당합당 직후 민자당 사무총장까지 지냈으나 지난 9월 자민련 부총재로 당적을 옮겼다.
고명승씨는 12·12 당시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겸 상황실장으로 육군 대령이었다. 육사 15기의 선두주자였던 고씨는 최규하대통령이 거주하고 있던 삼청동 총리공관의 경비를 장악하는 역할을 했다.
고씨는 계엄사에서 파견나온 총리실 특별경호대장 구정길중령등 경호대의 무장을 해제하고 자신이 지휘하는 청와대경호실병력으로 대체했다. 이로써 전씨등의 총리공관출입이 자유로워졌을 뿐 아니라 최대통령이 고립감과 위압감을 느껴 결국 신군부측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의 사후재가를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씨의 검찰출두에 맞춰 이날 하오 구중령도 출두해 두사람간의 대질신문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전북 부안출신인 고씨는 이후 수방사령관, 기무사령관등 군요직을 두루 거쳐 89년 12월 3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대장 예편했다. 고씨는 14대총선에서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전북 부안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송용회 기자>송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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